아이가 5살 되던 해였던 걸로 기억한다.
큰아빠한테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새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놀던 아이가 집이 갈 시간이 되자 대뜸 자전거 열쇠를 잃어버렸단다. 아파트 곳곳을 뒤지다 보니 날은 점점 저물어가고 조바심이 점점 분노로 변해갈 때쯤이었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 중 하나가 도로에 떨어져 있는 걸 봤다는 말에, 서둘러 가 보니 차도에 낯익은 자전거 열쇠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자전거 열쇠를 얼른 집어 들고는 거칠게 아이 손을 잡아끌고 집으로 와서 아이를 씻기며 등짝에 벌건 손자국이 날 정도로 몇 대를 때렸나 모르겠다.
아이를 때린 것도 뼈에 사무칠 정도로 후회스러운 일이지만, 그날 이후 지옥은 이어졌다. 며칠 밤을 스스로를 비난하고 자책하는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나처럼 폭력적인 엄마에게 태어난 아이도 불쌍했고, 아이를 키울 자격도 없는 엄마라는 생각에 시달렸다. 아이를 키우며, 이성을 잃고 손찌검을 한 건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그 일 이후로 꽤 한참을 울고 있는 다섯 살 무렵의 아이를 보면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아들 얼굴이 겹쳐 보일 때가 있다.
아무리 어려도 자기 물건을 자기가 잘 챙기고, 뭐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확고한 나의 믿음을 저버린 아이의 행동은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이를 훌륭하게 잘 키우고 싶은 열망이 강할수록 잠든 아이를 보며 죄책감과 수치심과 후회의 눈물로 보내는 날들이 늘어갔고, 무던히도 애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인생을 통틀어 아이를 키울 때만큼 희로애락을 진하게 느낀 때도 없었다.
돌이켜보니 노력해도 별반 달라지는 것 없이 애만 쓰느라 진을 빼고 있는 그때의 내가 안타깝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서른 중반의 나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제발 이루기 위해 구하는 마음을 그만 멈추고, 지금 여기의 나를 한 번 맑은 눈으로 돌아보라고.
아이에게 죄책감과 미안한 그 마음을 보채는 아이 달래듯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라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허깨비 같은 생각 하나 끊어진 그 자리에 고통과 괴로움이 화로에 눈 녹듯 사라질 테니 부질없는 집착일랑 내려놓으라고.
진리에 이르는 길은 저기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생겼다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 마음 하나 내려놓으면 지금 여기가 바로 천국이라고.
지난 삶에서 괴롭고 힘들었던 순간과 늘 함께였던 건, 더 나은 무언가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 한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했고, 좌절스러웠고, 원망스러웠다.
고통과 괴로움의 폭풍 속에서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바람이 없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더 나은 나를 추구하는 생각 하나 떨어진 그 자리에 남는 건 무엇일까? 더 나은 나란 것이 실제 존재하는가? 더 나은 나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나는 행복한가?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미래에 얻게 되는 줄 믿었던 더 나은 나란 없다. 더 나은 나를 찾아 헤매는 사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만이 있을 뿐이다. 한 순간도 현재의 나에 머무를 수 없었다. 더 나은 내가 목표였던 나는 지금 현재의 부족한 내 모습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 바로 고통이다. 나의 부족한 모습으로 더 나은 나에게 끊임없이 구애하는 나는 비참하게 차이기 십상이다. 더 나은 나를 얻지 못한 이유가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고 더 노력하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더 나은 나란 없다. 애초 있지도 않은 그 무엇을 위해 늘 현재의 나를 짓밟았기 때문에 나도 아이도 행복할 수 없었다. 더 나은 나를 구하는 마음 하나만 없었다면 '지금 이 순간 나'밖에 실제 존재하는 건 없다. 더 나은 부모가 되려는 집착만 내려놓으면 나도 아이도 존재 그 자체로 경이로움과 감사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