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남서부에는 4년에 한번씩 인위적 또는 자연적으로 산불이 발생한다고 한다. 한 번 발생한 산불은 몇 개월 동안이나 지속되기도 하면서 사람과 동식물들의 폐허가 된 참혹한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보는 이들의 마음도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듯하여 하루빨리 진화되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그런데, 4년에 한번씩 발생하는 산불이 발생하는 이유는 섭씨 200도씨 이상에서 솔방울이 벌어져 씨앗을 내보내 방크스 소나무의 번식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에게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재해지만 호주의 작은 솔방울 싹에도 차별없는 영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법 없이 자연의 질서에 따른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우주의 신비와 경이로움에 놀라울 뿐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이었다. 맞은 편에 있던 어린 아이가 신발을 신은 채로 의자 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한 어르신이 사람들 앉는 자리에 아이가 신발을 신고 다니면 어떻하냐고 한 마디하셨고, 아이가 그러거나 말거나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던 엄마는 건너편 어르신을 한 번 쳐다보더니, 할아버지가 남의 아이한테 무슨 참견이냐며 아이 손을 잡고 지하철 다른 칸으로 옮겨갔다. 어르신의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두 모자 뒤를 따랐다.
부모는 장차 아이가 커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워할 것들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아이 기죽일까봐 지나치게 허용적인 부모들을 볼 때면 나의 일처럼 안타깝다. 나 또한 아이가 어릴 땐 화나 짜증을 걷어내고 담백하게 아이가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쳐주는 방법을 배우지 못 했기 때문에 참다참다 내가 원하지 않은 시점에, 누구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폭발하여 모든 걸 태우고 하얀 재만 남아 후회와 자책의 밤을 보낼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늘 웃는 엄마가 좋은 엄마는 아니다. 때론 따끔하게 야단칠 때도 있지만, 그것이 아이에 대한 사랑의 철회가 아니다. 어짐이 없는 모짐은 오랜 상처로 남고, 모짐이 없는 어짐은 늘 휘청거린다. 모진 말도 건넬 수 있는 부모 슬하에 있을 때 아이가 실컷 실수하고 실패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칭찬만 받고 자란 아이는 작은 좌절에도 금새 무너진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기도 하고,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란 걸 아이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