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에 대한 약간의 강박이 있다. 누군가와의 약속 시간에 늦는 일이 거의 없다.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미리부터 준비하고 조금이라도 늦을까 봐 조바심이 나고, 불안하다. 시간을 지키는 일이 나쁜 건 아니지만, 시간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기 때문에 관계에도 어려움이 있다. 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는 신념은 언제부터 생긴 걸까.
어린 시절, 엄마는 내게 누구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특히, 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엄마한테 크게 혼이 나기도 하고, 때론 매를 맞기도 했다. 약속한 시간에 맞추지 못하면 엄마한테 또 혼이 나거나 매를 맞을까 봐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긴장하게 되었다.
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비난이나 처벌이 두려워 최대한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덕분에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마음 한편엔 인정받지 못할까 봐 늘 전전긍긍했다.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여 바다란다. 깨끗한 물, 더러운 물 할 것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온전한 바다이다. 깨끗한 물은 깨끗하다고 받아들이고, 더러운 물은 더럽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바다가 아니다.
인정받고 칭찬받는 나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나는 여태껏 반쪽짜리 삶만을 살고 있었다. 사는 게 행복하지 않고, 실수할까 봐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스스로 늘 부족한 것 같아 배움으로 나를 채우려고 했다. 아무리 배워도 배움의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
피치 못할 사연으로 몇 년간 이어오던 배움의 기회를 잃게 된 적이 있다. 갑자기 중단된 배움으로 오래 품어왔던 꿈을 잃은 듯 했다. 몇 날 며칠을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 할 만큼 좌절과 절망에 빠져 지냈다. 밤새 뜬 눈으로도 지새다 설핏 잠이 들려던 순간,
"보물은 네 안에 있어. 배움은 네 안에 있으니 밖에서 구하지 말라"
는 생각인지 음성인지 모를 뭔가가 내게 느껴졌다. 일도 배움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절망에 괴로웠던 마음이 한순간 내려놓아졌다.
굳이 배움으로 나를 채우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존재 자체로 온전하고 귀하니 그저 존재하라는 명이 온 몸에 스며드는 듯 했다.
엄마도 나와 비슷한 경위로 얻게 된 상처로 시간이나 완벽주의 성향을 얻게 되지 않았을까. 완벽이라는 허상을 쫓아 애썼던 엄마의 삶도 고단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무겁고 힘겨웠을 엄마의 삶도 글썽이는 마음으로 끌어안을 수 있었다.
단숨에 배움의 기회가 끊어진 덕분에 나에게 배움이란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인간에게 다가온 시련과 고난은 내 안에 아직 돌봐지지 않은 상처들에게 빛을 쪼일 기회를 준다. 시련과 고난은 삶이 나를 괴롭히려 한 것이 아니라, 아직 풀지 못 한 숙제를 마치고 더 높이 날아오르라는 신의 선물이리라.
빈 그릇이 쓰임이 있는 법이고, 비어있는 공간이 많을수록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으니, 시련과 고난은 다함이 없는 신의 은총이며 축복이다. 인생의 바닥을 쳐야 진짜 나를 만나는 천국의 문이 활짝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