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생
스스로 살려고 하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
밤 12시가 지난 시간, 벽 너머로 아들 목소리가 들린다. 늦어도 11시 전에는 잠드는 아이가 이 밤에 무슨 일인가 해서 아이방을 노크했다.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던 모양이다.
"아들, 12시가 넘었어. 낼 학교도 가야 하니 그만 자야지~~."
"미국에 간 친구인데, 오랜만이라 10분만 더 통화하고 잘게요."
"그래, 10분 안에 친구한테 인사하고 자~."
"네."
10분이 흘렀다. 여전히 이야기꽃은 잦아들지 않고 나는 다시 아이 방문을 노크한다.
"약속한 10분이야. 어서 자자~~ 낼 피곤할까 봐 걱정돼~."
"늦게 자도 하나도 안 피곤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오늘은 늦었으니 다음에 또 통화하자고 하고, 얼른 자면 좋겠어~~."
문을 닫고, 내 방으로 돌아와 얼마 있으니 더 이상 아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잠이 들었는지, 카톡으로 더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쩐 일인지 아들 말대로 자기가 알아서 하겠거니 싶었다.
예전 같으면 문을 닫고 내 방으로 돌아와서도 벽에 귀를 대고 계속 통화하는 건 아닌지 의심을 거두기 힘들었을 터이다.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어떤 친구길래 이렇게 늦은 밤까지 통화하는지 걱정도 되고, 사춘기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땅이 꺼져라 긴 한숨을 쉬며 잠자리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자리에 누으며,
' 맞아. 아들을 억지로라도 자게 해서 내 불안을 잠재우고 싶은거였어. '
나의 솔직한 마음과 마주하고나니 한창 질풍노도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아들과 평화롭게 잘 지내려면 아들에게 바라는 내 마음부터 더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게 진정 아들을 돕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를 돕는 길이기도 하다.
아들이 엄마의 의심 가득한 마음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지 않는 엄마 말은 나라도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들을 위한다는 이유를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엄마의 부질없는 노력은 서로 사이만 멀어지게 할 뿐이다.
아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라는 뜻이 아니다. 아들을 엄마의 입맛대로 고쳐놓고 말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닌지 알아차리는 게 우선이다. 혹시 시커먼 사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잘 걷어내고 물처럼 맑고 담백하게 아들과 마주하는 것이 서로를 살리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에고를 죽이고 또 죽여라. 그것만이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