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평화로운 대화가 흐르는 세상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가꾸어 오던 일을 닫게 되었다.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함께 고민하고, 꿈꾸는 일 자체로 가슴 벅찬 나날들이었다. 코로나 상황에도 빈 틈을 내기 쉽지 않았는데, 몇 년 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몇 해 동안 빼곡했던 나의 일정표가 휑하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그동안의 나를 비춰보게 된다.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 내가 왜 이렇게 쓸모없게 느껴질까. 왜 이렇게 좌절감과 절망감에 빠져있게 하는 걸까. 나에게 일이란 무슨 의미였을까.
사람들을 만나고, 배움을 나누는 일련의 일들이 노자의 말처럼 무언가를 붙잡고서 채우려 한 건 아니었을까. 더 나은 나를 위해, 더 나은 우리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지금의 나를, 지금의 우리를, 지금의 세상을 소비한 건 아니었을까. 더 나은 뭔가를 위해 노력하고 애써서 얻은 것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는 노자의 날카로운 통찰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번 일뿐이랴. 지나온 삶이 온통 그랬다. 부모님께 좋은 딸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 한 나 자신을 원망했고, 좋은 엄마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 한 나 자신을 비난했고, 좋은 동료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 한 나 자신을 자책했다. 그럴 때 내 마음을 어땠을까.
좋은 딸이지 못 한 미안함, 좋은 엄마이지 못 한 죄책감, 좋은 동료이지 못 한 자괴감도 나의 일부인데, 그 미안함, 죄책감, 자괴감을 피하고, 떨치려 했으니, 마음 입장에선 자신의 일부를 도려내는 듯 한 아픔이지 않았을까. 자신을 아프게 하는 마음 입장에선 내게서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그럴수록 가난해져 가는 마음만큼 괴롭지 않았을까.
내 마음이 내게 바라는 것 오직 하나뿐이었다. 미안하면 미안 한대로,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원망스러우면 원망스러운 대로, 오히려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랐을 터이다. 그때 그때 살아 움직이는 파도를 바다에서 어떻게 분리할 수 있을까. 바다는 파도가 치기 때문에 바다인 것을 바다에서 파도를 떼어내면 그것이 바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가 막힌 타이밍에 삶의 역설과 마주한다.
숨 쉬는 것 조차 어려워진 순간, 묵직한 깨달음이 뚜벅뚜벅 내게 왔다.
애써서 얻게 된 것은 오래가지 않으니, 그저 삶에 맡겨라. 그리고, 아픔 또한 삶이라는 큰 흐름 속에 있다는 것, 세상도 흐르고, 마음도 흐른다는 걸 잊지 마라. 삶이 살게 하라.
무엇보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알아주는 것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 이 모든 것이 한치의 모자람 없이 충분했다. 인연이 맺어지는 것도 축복이었고, 인연이 풀어지는 것도 축복이다. 같은 곳을 향해 함께 길을 걸었던 매 순간순간이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아름다운 종소리 이후 찾아온 고요 또한 내 삶을 더 깊게 숙성시킬 천금같은 여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