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 하지유지

최고의 지도자는 사람들이 그가 존재한다는 것만 안다

by 하늘피리

노자의 도덕경 17장엔

"최고의 지도자는 사람들이 그가 존재한다는 것만 안다.
그다음은 사람들이 칭송하는 지도자다.
그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다.
그다음은 사람들이 경멸하고 무시하는 지도자다."라는 문구에서 보듯 노자의 핵심 가치가 무위(無爲)임을 거듭 확인한다. 일체의 부자연스러운 행위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만 알 수 있는 자가 최고의 지도자이다.


이 문장을 보면서 나는 내 삶에서 무위의 가치를 얼마나 구현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우선 가정에서 무위의 부모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찍이 보고 배우지 못 한 까닭이다. 어릴 때 나는 부모님이 세상 누구보다 무서웠다. 뭘 잘못해서 혼이 날까 안절부절못했고, 그 잘못으로 부모님이 나를 버릴까 두려웠다.


그렇다 보니,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아이에게 점점 두려운 존재가 되어가는 있는 나를 발견하고, 얼마나 몸서리치게 싫었던지.


그래서 무진 애를 썼다. 아이에게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닌 부모가 되기 위해서.


그럼에도 어느 한계 이상 나아지지 않는 나를 보고 다시 좌절에 좌절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보기 싫은 나를 바꿔서, 보기 좋은 나로 바꾸는 것으론 분명 한계가 있었다.


보기 좋은 나와 보기 싫은 나는 누가 이렇게 나눈 걸까? 보기 좋은 나와 보기 싫은 나는 정녕 다른 건가? 이 둘을 나눈 건 나의 에고의 짓이었다. 이 둘은 다르지 않았다. 둘은 하나였다.


성경에 한 우물에서는 쓴 물과 단 물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설혹 입에 닿을 땐 쓴 것 같다가도, 그 맛을 잘 음미해보고 삼켜보면 결국 단 것이다.


보기 싫은 내 안에 이미 변함없는 단 맛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애써 내 안의 보기 싫은 나들을 내치지만 않으면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온전한 나와 만날 수 있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온전한 자신이 되도록 모든 것을 여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비폭력 평화주의자 간디가 이 세상에서 그가 인정하는 유일한 독재자는 내 안의 작은 목소리 뿐이라고 했다. 내 안의 작은 목소리를 내는 독재자가 필요한 것은 조건 없이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뿐이다.



마음이 아픈 이들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볼 때가 있다. 눈동자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자신의 아픔 때문에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자신의 사랑이 너무 커서 아플 일이 많다는 걸.


내 안의 작은 목소리도 사랑으로 잘 보듬어 '또 다른 나'들도 더 잘 보듬으라는 신의 깊은 뜻을 헤아릴 날이 그들에게도 곧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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