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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Oct 30. 2022

핼러윈과 촛불, 반지성과 지성

그것이 반지성임을 알려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 항상 공동체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망자만 149명, 부상자는 이 시간에도 늘어나고 있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어제 발생했다. 이태원 소재 유명한 클럽에 가기 위한 수만 명의 인파가 좁은 골목에 모였고, 그중 최초 넘어진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뒷사람은 넘어진 사람에 의해 또 넘어지고, 넘어짐을 모르는 군중은 뒤에서 계속 목표를 향해 자신과 타인을 힘겹게 밀어내고 있었다. 목표에 도달하려는 움직임이 모여 150여 명을 죽이는 지옥도. 그리고 그 현장 근처에서 춤을 추는 기괴함. 이런 비명과 웃음이 공존하는 비정상적인 장면을 보면 "우리가 매일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라고 말한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말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 다만 이런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






그것이 반지성임을 알려줄 의무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우리에게 있었다.


스스로를 저 비좁은 골목에 갈아 넣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혀를 차면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할 것으로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클럽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알 것 같기에 마음 한편이 계속 아려온다.


학생 때부터 명문대라는 전부가 도달할 수 없는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었다. 좋은 학교에 가고자 하는 목표와 열망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개성과 창조성을 무시한다. 그리고 부모의 열망에 방해가 된다면 양질(良質)의 소양을 짓밟기까지 한다. 대학교에 가고 나면 일류 시민이 되기 위한 취업 전쟁에 참전한다. 공무원 일타 강사들은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 자들에게 '어머니를 생각해라.', '시험공부를 하지 않는 자는 난신적자'라며 채찍질한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 통과할 수 있는 문을 만들어놓고 어떻게든 통과하라 보채는 어른, 그들 밑에서 교육받은 모든 젊은 아이들은 어떻게든 목표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나.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고 가르친 것이 그것밖에 없는데 다른 행위를 기대할 수는 없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촛불행동이 주도한 지난주 촛불 집회에는 30만 명이 모였다. 이태원 참사의 인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이다. 넓은 곳에 모였고, 사람들 사이의 간격도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그들은 어떤 목표지점에 도달하고자 한 사람이 아니다. 빠지고 싶으면 중간에 언제든지 빠져도 되고 집에 가고 싶으면 가도 된다. 그들은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모였고, 광적으로 목표에 집착하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들의 집회로 대통령이 자진 사퇴한다고 발표하면 당황했을 것이다.


데려온 김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한 번 더 빌리자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우리는 어떤 사명을 이루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아이도 부모의 욕망을 이뤄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고, 부모도 자신의 욕망을 대신 이뤄줄 아바타로 자식을 낳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느슨하게 연대하면서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면 된다. 삶에는 반드시 이뤄야 할 목적도 찾아야 할 파랑새도 없다.


모두가 통과할 수도 없는 좁디좁은 문에 아이들을 밀어 넣는 반지성적 교육관이 아이들 스스로도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반지성의 생명체를 길러냈다. 왜 명문대에 꼭 가야 한다고 강요받았을까? 왜 좋은 직장에 들어가라고 강요받았을까? 왜 스스로를 저 죽음의 골목으로 밀어 넣었을까?





조심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천국으로 가는 좁은 문 같은 것은 원래부터 없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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