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법은 '공연히 사실(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 '공연히'는 공공연하게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직접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까 반대로 말하면 특정 소수인만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우리는 이걸 뒷담화라고 부른다)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두 사람 사이에 대화나 특히 통화 중에 서로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하더라도 명예훼손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법조인에게는 당연하지만 이것을 물어보는 의뢰인이 많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공연성의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는 '전파 가능성 이론'이라는 것을 채택하는데, 쉽게 말하면 특정 소수인에게 말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존재하면 '공연히'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입이 싼 사람에게 말하면 전파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그리고 뒷담화의 대상자와의 관계에 따라서 달라진다. 예컨대 내가 내 친구의 욕을 그 친구의 아버지에게 해봤자 그 아버지가 어디 가서 자신 아들의 욕을 옮기진 않을 것이다. 이럴 땐 '공연성'이 부정된다.
그러면 누구에겐 뒷담화를 해도 되고 누군 안 되는 것일까? 법원은 매우 불확실한 기준을 세워놓고 사안에 따라 다르게 판단한다(이 점은 학계의 비판이 크다. 사실 변호사 사이의 비판이 더 크다. 우리는 승/패소와 관련이 있지 않은가? 다시 생각해 보니 어떤 변호사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확실한 기준을 세우면 변호사 선임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아래는 공연성과 관련된 최신의 판례이다. 주의할 점은 대상 판결의 '단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해자의 친척'에게 뒷담화를 하면 공연성이 모두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판례가 있다는 것 정도로 넘어가고, 나의 행위가 범죄(또는 피해)에 해당하는지는 가까운 변호사를 찾아가서 반드시 상담을 받아야 한다.
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20도5813 전원합의체 판결
피해자와 피해자의 친척이 있는 자리에서 '저것이 징역 살다 온 전과자다'라고 말한 것은 사실 적시 명예훼손 행위에 해당한다.
대법원 2020. 12. 30. 선고 2015도12933 판결
피고인은 관광버스회사를 운영하는 자이고 A는 피고인의 초등학교 친구로 둘은 매우 친한 사이이다. 피고인과 A가 피고인의 사무실에서 담화를 나누던 중, 피고인의 직원(버스기사)인 피해자(여)가 같은 동료 X(남)의 월급을 가불 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피고인은 피해자와 X가 부적절한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남편이랑 이혼했는데, 아들이 장애인이래. 그런데 X가 살아보겠다고 돈 갖다 받치는 거지."라고 자신의 친구 A에게 말을 했다. 피해자는 이 통화가 끊기지 않은 상태여서 피고인이 A에게 한 말을 들었고 이를 녹음하여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법원은 피고인과 A가 매우 친한 사이임에 반하여, A는 피해자와 X를 모르기 때문에 전파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2021. 4. 29. 선고 2021도1677 판결
피고인과 피해자는 모두 교육청 소속 직원이다. 피고인은 "피해자와 X 사이에 불미스러운 소문이 돈다."라는 말을 X와 친한 Y에게 말했다. Y는 다시 Z에게 피고인으로부터 들은 사실을 전달했다. 법원은 X와 Y 사이를 고려할 때 전파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2021. 4. 8. 선고 2020도18437 판결
건축주가 현장에서 일한 인부에게 "현장소장이 노임 일부를 수령한 후 유용하였다(당신에게 갈 임금을 현장소장이 편취하였다는 의미)."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은 전파 가능성이 있어 유죄로 인정하였다.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19도12282 판결
피고인과 피해자는 직업 군인이다. 피고인은 음식점 창밖으로 지나가는 피해자를 보면서 같이 밥을 먹던 하사 A에게 "내가 새벽에 운동을 하고 나오면 헬스장 근처에 있는 모텔에서 피해자가 남자 친구와 나오는 것을 몇 번 봤다. 나를 봤는데 얼마나 창피했겠냐."라는 말을 하였다. 대법원은 공개된 식당에서 위 발언을 한 점, 옆 테이블에 병장 B 등 다른 손님들이 있었던 사정을 더하여 공연성을 인정해 유죄로 보았다.
대법원 2020. 12. 30. 선고 2015도15619
피고인들과 피해자는 골프장의 경기도우미(캐디)이다. 경기도우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규정을 위반한 자에 대해서 징계를 스스로 결정한 후 골프장 운영 회사에 전달하고, 회사는 내부 의결을 거쳐 징계를 시행한다.
피고인들은 피해자에 대하여 출입금지 처분을 내려줄 것을 회사에 요청하였고, 피해자는 회사에 징계 요청서를 제출한 피고인들의 행위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고소하였으나 법원은 이 점은 무죄로 판단하였다. 다만, 피고인들이 피해자의 징계를 요청하는 동료의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허위의 사실을 기재한 서명자료를 동료에게 읽게 한 점은 유죄로 판단하였다.
* 명예훼손죄는 추상적 위험범이기 때문에 침해의 결과 발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발생해도 무죄일 수 있고 결과가 발생하지 않아도 유죄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