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nest Hemingway가 한 말로 잘못 알려진 이 말은 힌두 속담이다. 힌두 속담에서 비롯된 말이 아니라도 1897년 W. L. Sheldon이 "Ethical Addresses"에서 사용한 것이 확인되니, 1899년생인 헤밍웨이가 최초로 한 말이 아님에는 분명하다. 그래도 인터넷에 "there is nothing noble"을 검색하면 모두 헤밍웨이의 명언이라고 필사까지 하는 걸 보면 누가 이 말을 최초로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역설적이게도 "남보다 뛰어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모든 것이 내 것이 된다. 말조차 그럴진대, 물질이라고 왜 그러라는 법이 없겠나.
나는 남보다 뛰어나다고 해서 고결한 줄 아는 사람을 매우 싫어한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방송에 나와서 왼쪽 가슴에 커다란 상품명(변호사라는 직업과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북핵 문제에 대해서 떠드는 사람을 매우 싫어한다. 물론 이해는 한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니 그렇게라도 해서 자신을 상품화하는 동기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렇게 해서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이 파괴적이라서 싫어하는 것이다.
티브이만 끄면 그런 '험한 꼴'은 안 보는 줄 알았는데, 맙소사 브런치에도 그런 글이 넘쳐난다. 오늘 아침에도 아주 거슬리는 글을 하나 봤다. 글의 내용은 그리 길지 않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아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나는 출간 계약을 한 작가이다. 브런치를 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출간이다. 브런치에는 금전적 보상이라는 시스템은 없지만 출간 계약을 하기엔 최적의 플랫폼이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브런치가 출간을 하기에 최적의 플랫폼이니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출간 계약을 한 것을 축하한다. 나도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이라 글쓰기의 고통을 안다. 내 글이 세상에 알려진다는 것은, 그것도 다른 사람이 내 글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세상 밖으로 내어준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그 사람은 '나를 포함한 남보다 어떤 면에서 만큼은 뛰어난 사람'이 맞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의 그 글이 고귀하다고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참 많은 부분이 거슬리는데, 그 내용을 조목조목 다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내가 그 이유를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신의 과오를 깨달을 것 같지도 않다. 다만, 당신이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목표가 모두 출판인 것처럼', '여기를 떠나는 사람들이 보상이 없어서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이 공동체에 매우 해롭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출판 계약을 한 사실'이 당신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는 것은 아니다. 잘난 척은 그냥 잘난 척으로 끝나야 봐줄 만하지 잘난 것을 바탕으로 남의 마음까지 멋대로 판단한다면 그건 참 별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말한 대로라면 여기는 출판의 전 단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당신이 이 공동체를 그렇게 평가하고 더 나아가 그렇게 만든다면 그 사이에 있는 많은 삶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은 해봤는지 물어보고 싶다. 분명 자신의 인지적 편향을 강화하는 글(출판을 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사람의 글)만 봤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관심작가가 없거나 매우 적다. 거의 예외가 없다고 봐도 된다.
여기 계신 수많은 작가들이 나보고 '까칠'하다고 평하시는데, 아마 한 번씩 불쑥 튀어 나오는 이런 점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까칠하다고 하셔도 어쩔 수 없다. 이 공간에 그려낸 자신만의 많은 삶과 심지어 아픔조차도 '출판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특수한 경험'으로 비하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오전 내내 이 글을 쓸까 말까, 발행할까 말까로 고민했지만 최대한 정제된 감정으로 발행은 해야겠다. 나는 소시민의 삶을 권력으로 뭉개는 걸 눈뜨고 못 보는 사람이라서 더 그렇다. 여기서 출판은 권력이다. 적어도 여기선 그렇다. 그리고 그 사람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 글을 썼겠지. 내가 공동체를 위해 '창조하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엇을' 창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남들이 원하는 글'을 쓰는 건 창조하는 행위가 아니라 소비하는 행위이다. 그것 만큼은 그 사람이 알았으면 한다. 나는 유명한 글을 오마주 하는 걸 좋아하니 힌두 명언을 내 방식으로 바꿔서 글을 마무리하겠다.
글의 훌륭함은 출판에 있지 않다.
글의 진정한 훌륭함은 자기반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