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약에 따라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채무불이행에 따른 민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만약 요리를 하던 주방보조가 냄비를 태웠다면 냄비 가격에 상응하는 손해를 배상하면 된다. 그런 경우 냄비가격을 월급에서 빼고 주는 경우도 많은데, 원칙적으로는 임금 전액을 주고 냄비가격에 상응하는 배상을 따로 받아야 한다. 냄비를 자꾸 태워서 직무에 적합하지 않다면 근로계약을 해지하면 된다.
징계는 민사상 손해의 발생이라는 측면이 아니라 직장 내 질서유지, 업무효율의 유지 내지는 향상, 직장 공동체의 해체 억제 등의 초과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슨 행위를 할 경우(또는 하지 않을 경우)에 어떤 징계를 받을지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미리 동의하여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는 대등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 집단으로 힘의 균형을 맞춰 다수 노동자 대 사용자가 그 절차와 내용을 정하면 더 좋겠지만 그것이 무리라면 적어도 노동자 개인이 묵시적으로라도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서로 동의하였다는 것만으로 어떠한 내용의 징계도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지는 않는다. 첫째, 징계도 비대칭적이긴 하지만 계약상의 권한이기 때문에 적법 영역 내에서만 징계가 가능하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매질을 하거나 팔을 자르는 행위는 현대사회에서 절대적으로 금지된다. 둘째, 징계는 업무에 관한 것을 원인으로 업무에 관한 제재만을 내려야 한다. 부부싸움을 자주 한다는 이유로 징계를 할 수 없으며, 업무성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용자 개인의 집안일을 시킬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동관계는 공법과 사법의 중간 영역을 차지하므로 징계와 관련한 여백은 공법과 (민)사법 상의 제(諸)* 원칙이 적용된다. 따라서 취업규칙에 징계에 관한 사항이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면 문언에 따라 사용자에게 무한의 권한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고, 무효이어서 해고를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법의 적용은 현상(사실관계)을 추상적 규범인 법에 맞추어 결론을 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 따라 대법원의 한 판례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1) 사실관계
버스회사에 근무 중인 A는 업무 중 교통사고를 발생시켰다. 회사는 경위서의 제출을 요구하였으나, A는 경위서 제출을 거부하고 동료 운전사들에게 연장근무를 하지 말라는 등의 언동을 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A는 버스에 승객을 승차시킨 상태로 15분 간 버스를 운행하지 않은 후 버스가 고장 났다는 핑계로 승객을 모두 하차시켜 놓고도 회사에 이 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았다.
2) 해당 회사의 취업규칙
해당 회사의 취업규칙 제13조 "기업운영 상 또는 종업원 관리 상 지장을 초래케 한 자는 해고할 수 있다."
3) 법원의 판단
회사의 취업규칙 중 징계에 관한 사항이 지나치게 추상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A의 행위를 볼 때 A와 회사의 신뢰관계는 완전히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A와 회사는 근로관계를 유지할 수 없고, 그에 따른 회사의 징계해고는 정당하다.
일반적으로 무단결근이나 정당한 지시 불이행 그리고 근무지를 무단 이탈하는 행위나 위법한 쟁의행위는 정당한 징계사유로 인정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노사가 협의 후에 구체적인 징계의 절차와 사유 그리고 그 내용을 정하는 것이 권장된다.
*'여러'라는 뜻의 관형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