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는 항상 당당하게 영어, 한국어로 대화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 '없어요', '사장', '나중에'와 같은 특정한 몇 개의 단어는 알고 있지만 완전한 문장을 구사하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더듬더듬 영어 몇 단어 정도는 알고 있지만 유창하게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문장을 내뱉지는 못한다. 특히 상대방이 비영어권 국가에서 온 사람이라면 내가 영어로 그와 대화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나는 몇 마디 영어로 더듬거리다가 그에게 정중하게 부탁한다.
결국 그와 나는 그의 휴대전화를 사이에 두고 '튀르키예어'와 '한국어'를 말한다. 길이가 긴 문장이나 복문 형태의 말을 하면 번역기는 굉장히 높은 확률로 전혀 다른 말을 한다. 법률 용어를 못 알아들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최대한 쉬운 단어를 선택해서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을 이해시켜야 한다. 최대한 길이가 짧은 문장으로 법률 요건과 효과에 대해서 설명을 해줘야 한다. 이럴 땐 비싼 돈 주고 결제한 '야너두'도 '뉴스에스프레소'도 원망스럽다. 30년 넘게 영어 공부를 하루도 놓지 않고 하고 있는데 영어로 간단한 대화도 못 하다니.
그런데 그게 꼭 내 잘못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가 일을 했다고 하는 공사현장의 정확한 주소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공사는 construction 외에 쓰는 단어가 없지 않나(더 많이 쓰는 단어가 있으면 알려주셔도 된다). 관사는 우리 같은 영어 무지렁이에게 방해만 될 뿐이다. 관사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address를 site로 바꾸기도 하고 같이 써보기도 한다. 튀르키예어에는 거친음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꼰스뜨럭숀이라고 발음해보기도 한다. 그래도 알아듣지 못한다. 이 정도라면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든다.
그는 머나먼 땅 튀르키예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이곳 한국까지 왔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꽤 오랫동안 했다. 그런데 자신을 고용한 사장으로부터 월급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는 노동청에도 찾아가고 수사기관에도 가봤지만 별다른 도움을 얻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 더듬거리는 국영문 혼용체와 번역기 하나로 제대로 된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겠나. 그리고 그것을 받아주는 공무원이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일처럼 처리를 해주겠나.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나를 찾아온다. 또 돈도 못 받고 (오히려 쓰고) 일을 한다.
소송은 승소로 마무리됐지만 사장은 이미 재산을 다른 사람의 명의로 돌려놓은 상태다. 사장의 통장 전부를 압류했지만 남아있는 돈이라고는 400원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는 이제 곧 비자가 만료되어 쫓겨나야 한다. 그는 방송국에 사연을 제보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참 알고 싶다'에 제보한다고 한다. 튀르키예 친구에게 쓴 돈이 벌써 100만 원이 다 되어가지만 나도 아직 사건을 놓지는 않았다(이런 걸 보면 내가 제정신이 맞긴 한지 잘 모르겠다). specific site만 그가 나에게 주면(그는 공사현장을 직접 방문한 후에 정확한 주소를 나에게 주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끝까지 돈을 받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장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 '당신 2002년에 튀르키예가 형제의 나라라고 응원하지 않았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