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케틀레와 앙드레-미셸 게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회적 현상이 아직 개인의 선택이라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살'이라는 아주 중요한 사회적 현상도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이전에는 개인적인 수준에서만 다루었다. 즉, 자살은 '자살을 하기로 선택한 자의 자유의지의 표현', 내지는 '정신 이상자의 행위', '특정한 인종에서 높게 나타나는 현상' 등으로만 파악하였다. 물론 뒤르켐이 '자유의지', '정신 이상적 자살', '자살의 인종적 차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자살을 바라보았고, 그 이후에 자살을 포함한 많은 현상이 사회적으로 다루어지게 된다.
Le Suicide
그는 그의 세 번째 저서 《Suicide: A Study in Sociology》(1897, 원제는 프랑스어 Le Suicide)에서 아주 조심스러운 접근법에 따라 자살은 사회적 현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의 유기체적, 심리적 요인을 분석한다. 그리고 습도나 온도와 같이 물리적 환경이 자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명되지 않는 남은 부분은 소거법에 의해 사회적 원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자살 고위험군?
뒤르켐의 연구를 직접 인용하는 것이 이해하기에 가장 편할 것이다. 그는 초기 연구에서 프랑스의 자살에 대하여 조사를 했는데, 인종이나 지역의 물리적 차이 등을 제외한다면, 남자와 여자 중에서는 남자가,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 중에서는 개신교도가, 부자와 빈자 중에서는 부자가, 미혼자와 기혼자 중에서는 미혼자가 자살할 확률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니까 사회의 결속력과 통합력이 더 강한 집단(여자, 가톨릭교도, 빈자, 기혼자들은 결속력이 강하다)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자살할 확률이 낮다. 뒤르켐에 따르면 가톨릭교도이지만 냉담자인 나는 자살 위험군이다(4개 중에 3개나 해당된다. 다행히 부자는 아니다).
기능주의Functionalism
사회가 개인에게 특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개인은 사회가 주는 힘에 따라 행동하거나 사고한다는 입장을 우리는 거시사회학macrosociology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회가 제공하는 유대, 통제가 비행이나 일탈행위를 막는다는 점, 그러니까 사회가 개인에 미치는 기능functions에 집중하면 우리는 그 이론을 기능론(내지 기능주의 Functionalism)이라고 칭한다. 기능론에 따르면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은 미리 설정된 사회적 합의(그것이 어떤 방법에 따라 확립된 것이든)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합의에 의해 구성된 사회는 개인에게 통합과 안정을 제공한다.
Egoistic Suicide
뒤르켐은 사회적 결속을 사회적 통합과 사회적 규제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서 설명했다. 사회적 통합은 사회가 개인을 끌어당기는 불균형적 힘이다(반대로 개인은 사회를 끌어당길만한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다). 뒤르켐은 사회적 통합이 약해졌을 때 이기적 자살Egoistic Suicide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가톨릭교도들은 고해성사 및 미사 등의 절차를 겪으면서 사제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교회(敎會) 공동체가 중심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개신교는 -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와는 정반대로 - 모든 교도들이 신 앞에 홀로 서는 존재이다. 이들에게는 교회보다 개인적 구원의 도구인 성경Bible이 중요하다. 개신교도들이 성경을 들고 다니지만 가톨릭교도들은 성서를 잘 들고 다니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다. 뒤르켐은 이런 통합력의 차이가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 사이의 유의미한 자살률 차이를 보인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혼자는 부부 사이의 통합 때문에 미혼자보다 자살 예방에 있어서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
Altruistic Suicide
반대로 자살은 개인이 사회에 지나치게 통합되어 있을 때 나타나기도 한다. 사회가 개인을 너무 큰 힘으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개인의 욕구가 사회의 욕구로 대체되는 현상이다. 뒤르켐은 이를 이타적 자살Altruistic Suicide라고 명명했다. 뒤르켐에 따르면 이런 사회적 현상은 아주 특수한 경우에 일어나는 것이어서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는데,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카미카제(神風): 자폭 테러 전술'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Anomic Suicide
사회적 통제가 개인을 사회로 끌어당기는 힘이라면 사회적 규제는 사회가 개인의 삶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고 지침을 제시하는 힘이다. 사회는 개인에게 일정한 방향으로 가라는 목표를 설정하는데, 그런 목표가 전쟁, 급격한 사회 변동, 자연재해, 경제적 격변 등에 따라 흔들리게 되면(뒤르켐은 이런 무규범 현상을 아노미라고 명하였다) 이와 관련된 아노미적 자살Anomic Suicide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뒤르켐이 연구를 진행하던 시절은 벨 에포크(belle epoque)*로 정치적으로는 안정되어 있었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경제적으로 매우 급변하는 사회였다. 구 규범이 무너지고 새로운 규범이 생겨나기 전까지 시민은 목표를 제시받지 못한 무규범 상태에 있다.
and Fatalistic Suicide
아노미적 자살과는 정반대로 사회가 개인을 지나치게 통제하면 자살률이 높아질 수 있다. 뒤르켐은 이런 현상을 숙명적 자살Fatalistic Suicide라고 명했는데, 이타적 자살과 마찬가지로 숙명적 자살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저서에는 이기적 자살에 두 챕터, 이타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에 각 한 챕터씩 할애하였고, 숙명적 자살에 대해서는 따로 장을 나누어 설명하지 않은 탓에, 뒤르켐의 자살을 이기적, 이타적, 아노미적 자살로 3 분(分)하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숙명적 자살이 자살의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뒤르켐은 노예가 벗어날 수 없는 숙명으로 인해 자살률이 높다고 설명했고, 현대 학자들은 과도한 공부 압력에 못 이겨 자살하는 수험생들을 숙명적 자살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수험생 중 일부는 자신을 노예처럼 생각했다는 뜻이 아닌가.
*벨 에포크는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제3공화국 수립으로 정치적으로 안정된 후(1871)부터 제1차 세계대전(1914)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약 40년을 말한다. 클로드 모네나 오귀스트 르누아르 같은 걸출한 작가들이 이 시대에 활동했다.
참고문헌
Suicide: A Study in Sociology, Emile Durkheim, 1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