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하얀 봉투

내 핏줄을 스스로 파양(罷養)하던 날

by 진우

지옥 같은 집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수단은 '학교'였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나는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두 번의 개근상을 받았다.

남들에게 개근상이 성실함의 훈장이었다면, 나에겐 단 1분이라도 더 그 화약고 같은 집구석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


우리 집엔 여전히 술 냄새가 진동했고, 온통 죽은 조상과 족보만 생각하던 아버지도 그대로였다.

본인 가족들의 주린 배보다 죽은 조상의 제사상을 챙기는 게 더 중요했다. 그가 외상으로 잘난 조상님 제사상에 올릴 과일과 약과를 사 올 때, 엄마는 텅 빈 쌀독을 긁다 못해 동네 할머니 집 문을 두드리며 쌀을 꾸러 다녀야 했다.

산 가족들은 이웃의 적선으로 연명하는데, 죽은 귀신만 챙기며 술병 뒤로 숨어버리는 그 비겁한 핏줄이 나는 끔찍이 싫었다.


그런 아버지의 삶, 능력, 태도, 어느 것 하나 닮고 싶지 않았다.


'내 대에서 이 저주받은 집안의 핏줄을 끊어버리겠다.'


그 증오와 저주가 나의 십 대 시절을 버티게 한 유일한 동력이었다.

고2 겨울방학, 내 성적으로는 무리라며 코웃음 치던 담임선생님의 무시조차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미친 듯이 활자를 씹어 삼켰고, 결국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원하던 대학의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을지로 빌딩 숲 사이를 걷던 첫 출근날.

내 몸에는 딱 맞는 슈트가, 목에는 파란색 줄의 사원증이, 한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가 들려 있었다.


'오... 나 좀 멋진데?'


엘리베이터 거울 속 내 모습은 낯설 만큼 번듯했다. 학창 시절, 시내로 옷을 사러 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꾀죄죄한 소년은 이제 없었다.

내 몸을 감싼 제법 비싼 맞춤 슈트와 파란색 사원증은, 가난하고 무능했던 내 과거를 완벽하게 가려주는 훌륭한 갑옷이었다. 나는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첫 월급을 받은 날, 나는 고향 집으로 내려갔다.

은행에서 월급 전액을 만 원짜리 현찰로 찾았다. 그리고 문구점에 들러 하얀 편지봉투를 샀다.


두툼한 현금 뭉치를 하얀 봉투에 넣으며 나는 떠올렸다.

오래전, 헌터의 대가로 아버지가 받았던 그 역겨운 하얀 봉투를.


집에 도착한 나는 아버지에게 그 봉투를 내밀었다.

"첫 월급이에요. 필요한 데 쓰세요."


아버지는 봉투 안의 두께를 확인하고는 입이 귀에 걸렸다.

"아이고, 우리 아들 장하다! 역시 내 핏줄, 내 아들이야!
조상님께 잘하니 모든 것이 다 잘 풀리는구나. 조상님,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내가 피 토하듯 바친 생존의 대가를, 끝까지 그 허깨비 같은 조상의 공로로 가로챘다. 환하게 웃는 그 주름진 얼굴을 보며 나는 구역질이 치밀었다. '핏줄'이라는 단어가 목줄처럼 내 숨통을 조여왔다.


나는 속으로 씹어 삼켰다.


'이 하얀 봉투는 효도가 아닙니다. 당신의 그 역겨운 핏줄에서 나 스스로를 파양(罷養) 하기 위해 내미는 합의금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모르는 아버지는 내가 쥐여준 봉투에 '기분이 좋다'며 또 술을 샀고, 기어이 술상은 고함을 불러왔다. 내가 건넨 돈 따위는 역시 아버지를 바꾸지 못했다. 그 돈은 그저 더 독한 술이 되었고, 더 크고 거친 폭언이 되어 집안을 굴러다녔다. 그 어떤 것으로도 지독한 술 냄새를 지울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와 버렸다.


"나는 당신과 다릅니다."

그 문장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그 집을 나선 나는 오만의 절정을 달렸다.


"여기요! 제일 비싼 거, 대(大) 자로 주세요. 막국수도 큰 걸로!"


가격표도 보지 않고 소리쳤다. 식권을 되팔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PC방을 전전하던 굶주린 어린 나는, 이제 이 정도 기름진 고기쯤은 보란 듯 사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전문대를 나와 취업 준비 중인 사촌동생에게 나는 보란 듯이 족발을 밀어주었다.


"야,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형이 다 사줄게."


그것은 동생을 향한 호의가 아니었다.

굶주렸던 내 과거에 대한 보상이자, '나는 아버지처럼 가족을 굶기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뒤틀린 허세였다. 나는 그 알량한 돈 몇 푼으로 이 지독한 핏줄에서 벗어난 '성공한 인간'이 되었다고 믿었다.

동생이 보내는 경외의 눈빛을 허겁지겁 삼켜내며 족발 뼈를 뜯던 나는 알지 못했다. 어설픈 우월감으로 포장된 내 뱃속에는, 여전히 아버지의 그늘과 지독한 가난 속에 멈춰 서 있는 소년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알지 못했다.

'내 대에서 이 핏줄을 기어코 끊어버리겠다'던 그 차가운 다짐이


훗날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씨앗이었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