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방울 소리
내 친구 헌터는 잘빠진 짐승이었다.
검은 바탕에 갈색 점박이가 흩뿌려진 매끄러운 털, 쫑긋 선 귀, 그리고 채찍처럼 얇고 긴 꼬리.
이름처럼 날렵한 사냥개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집에서 녀석은 나의 유일한 도피처였다. 그곳에는 깨진 소주병도,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고함 소리도 없었다. 그저 내가 다가가면 낡은 방울을 울리며, 보드랍고 따뜻한 정수리를 조용히 내어줄 뿐이었다.
나는 틈만 나면 마당 구석 헌터에게 달려갔다. 숨 막히는 집 안의 공기가 싫었으니까.
헌터의 집은 아빠가 나무로 대충 얼기설기 엮어 만든 엉성한 개집이었다. 녀석의 세상은 짧은 목줄의 반경, 딱 그만큼이었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가 밥그릇이었고, 녹슨 물그릇에는 늘 흙먼지가 앉아 있었다.
가난했던 우리 집에는 개 사료를 살 돈 따위는 없었다. 헌터의 주식은 우리가 먹다 남은 국에 밥을 말아준 '짬밥'이었다. 고춧가루가 둥둥 뜬 짠 밥이었지만, 녀석은 내가 밥그릇을 들고 갈 때마다 목줄에 달린 방울을 '딸랑딸랑' 울리며 반겼다.
"헌터야, 밥 먹자."
내가 다가가면 녀석은 낑낑거리며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가만히 앉아 있는 녀석의 정수리를 쓰다듬을 때 손바닥에 전해지던 그 보드랍고 따뜻한 온기. 그 온기만이 내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위로였다.
평범했던 어느 날이었다.
아빠의 지인 몇 명이 집으로 찾아왔다. 낯선 아저씨들의 등장에 헌터가 맹렬하게 짖어댔다. 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빠는 나를 방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염소 잡을 거니까 방에 들어가 있어. 나오지 마라."
염소? 우리 집에 염소가 있었나?
어린 나는 의아했지만, 어른들의 일이라 생각하고 방에 틀어박혔다. 방바닥에 엎드려 헌터랑 갈 다음 산책 코스를 짜며 시간을 보냈다. 밖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별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한참 뒤,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나와도 된다."
나는 방문을 열자마자 헌터가 묶여 있던 마당 구석으로 달려갔다.
줄이 끊겨 있었다. 바닥은 물로 청소한 듯 축축했다. 늘 들리던 방울 소리도, 낑낑거리는 소리도 없었다. 찌그러진 밥그릇만 덩그러니 뒹굴고 있었다.
"아빠!! 헌터, 헌터 어디 갔어?"
내 물음에 아빠는 땀을 닦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목줄 끊고 도망갔다. 워낙 날랜 놈이라 못 잡았다."
거짓말.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언덕길을 향해 뛰었다.
"헌터야!! 헌터야!!"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등 뒤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그놈 너무 빨라서 못 잡는다니까. 그만 와라."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보았다. 낯선 아저씨가 아빠의 손에 쥐여주던 하얀 봉투를. 아빠는 그 봉투를 안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멋쩍게 웃고 있었다.
그날 밤, 밥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이 올라왔다. 아빠는 붉은 국물에 밥을 말며 내게 숟가락을 쥐여주며 말했다.
"염소탕이다. 몸에 좋은 거니까 많이 먹어. 비싼 거야."
나는 국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역한 된장 냄새 사이로 정체 모를 고깃덩어리가 보였다.
우리 집엔 염소가 없었다.
오늘 염소를 싣고 온 트럭도 없었다.
염소 울음소리도 듣지 못했다.
사라진 건 오직 하나, 헌터뿐이었다. 저 붉은 국물 속에 잠긴 것이 무엇인지,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안 먹냐? 먹으라니까!"
아빠의 호통이 떨어졌다. 그 순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슬픔과 역겨움보다 원초적인 배고픔이 먼저 내 위장을 쥐어짜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입은 스스로 벌어지고 있었다.
씹었다.
질겼다.
그리고, 고소했다.
매일 내 손을 핥아주던 녀석의 체온 대신,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입안을 맴도는 누린내 사이로 환청처럼 방울 소리가 딸랑거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그 소리마저 꾸역꾸역 씹어 넘겼다.
아버지가 부숴버린 나의 유일한 평온을 내 위장 속으로 밀어 넣으며, 나도 공범이 되었다.
나는 그저 굶주린 짐승새끼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