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소통을 위한 그림책 테라피
혹시 <세계명문가의 자녀교육>이라는 책을 읽어보셨나요? 그 책에서 톨스토이는 아홉 명의 자녀들을 키우면서 가정교사들을 초빙해 아침 9시부터 공부를 시작해 저녁 9시까지 영어, 독일어, 피아노 등을 배우게 했다고 합니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반성, 다짐하고 다시 계획하는 습관을 들이게 했대요. 톨스토이의 아내는 프랑스어, 러시아어, 역사, 지리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성경공부, 그림공부를 시켰대요. 책은 소리내어 읽게 했고 수학은 톨스토이가 직접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루 12시간 동안 공부를 시키면서도 매를 한 번도 들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해요. 작가답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줄 때는 실감나게 이야기를 잘 하고, 결심한 것은 반드시 실행하는 모습을 보인 지혜로운 아버지였대요.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를 매우 훌륭한 사람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톨스토이가 세운 학교가 자유로운 창의성 교육을 강조하는 대안 교육의 선구자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만 봐도 교육에 대한 그의 진심을 알게 합니다.
아이들이 파하고 다 돌아간, 나른한 오후였어요. 전에 있던 학교의 선생님께서 갑자기 전화하셨어요. 아들이 고등학교를 중퇴하려고 한다며 고민을 토로하셨어요. 이유를 물어보니 연극 배우가 되고 싶어 극단에 들어려고 해 실랑이를 하고 있다고요. 한 달 가까이 싸우고 설득하고 또 싸우고 반복하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제 경험을 말씀드렸어요.
중학교 때까지 너무 빛났던 첫째 아이가 영재학교 입시에 실패하면서 힘든 시기를 지냈어요. 실패로 인해 학원에서 이미 열패감이 쌓여 있었고, 열등감으로 아이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지요. 그 상태를 제가 몰랐고 제게 말을 하지 못한 첫째는 중학교 졸업 후 모든 상황에서 손을 놓아버렸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무기력증이 찾아왔어요. 주변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저는 자존심을 지키느라 아이를 억지로 공부시켰지요. 그 과정에서 저와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둘 다 너무 힘든 시기였어요.
그 와중에 중2가 된 둘째가 자기도 영재학교 입시 준비를 하겠다고 했지만 제가 반대했습니다. 또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여 형처럼 될까 봐 제가 너무 두려웠던 거지요. 둘째는 수학을 잘하는 편이라 가능성이 높다 했지만 첫째와 이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라 도전조차 못 하게 막았습니다. 그게 둘째에게는 큰 상처였다고 합니다.
작은 아이 친구들 엄마 중에 같은 교사가 있었어요. 가장 마음이 통하해 언니 동생하는 A엄마가 있었어요. 그 엄마는 가끔 저에게 학원이나 공부 방향을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엄마는 저와는 사뭇 교육 방침이 달랐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수학학원을 보내지 않았고 6학년이 되어서야 수학만 개인과외를 시켰어요. 영어학원은 중학생이 되어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었죠. “학원 보내야지. 00 학원이 좋더라. 언제부터는 시작 해야 한다.” 등 등의 간언을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주제넘는 참견을 한 거지요.
중학교 2학년이 되어 강제 포기하게 된 우리 아이와 다르게 영재학교에 가고 싶다는 A의 아들은 그때부터 시작했지만 무난하게 영재학교에 갔어요.
A의 아이가 영재학교에 합격한 후 입학하기 전 2월에 A에게 식사를 대접받으며 저 자신을 되돌아봤습니다. 작은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첫째의 상황에 투영하여 미리 못 하게 한 것은 바르지 못하다는 것을요.
합격했다고 한 턱을 내는 자리였는데
“언니, 언니 덕분에 우리 아들 영재학교에 갔어.”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띵 하고 쇠망치로 한 대 맞는 것 같았습니다. 빈말이라 생각하면서도 A가 아이를 대하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내 아들들과 소통이 없었던 제 선택이 몹시 후회가 되었어요.
이미 큰 아이가 걸어간 길이었기에 학원이나 공부하는 시기, 방법 등을 알려 주었는데 그 엄마는 나름대로 잘 소화했더군요. 자기의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며 차근차근 준비해서 성공한 것이었어요. 아들 자랑은 남 앞에서 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결정을 존중하며, 항상 믿어주고 사랑으로 대한 A의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상반된 태도로 자녀교육을 한 A를 보며 가슴을 치며 뒤늦은 후회를 했어요.
연극배우가 되기를 꿈꾸며 학교를 자퇴하겠다는 그 선생님께 A에게서 배운 것을 적용했어요. 아이와 세 가지를 실천해 보라고 조언을 드렸습니다.
사노 요코의 <백만 번 산 고양이>를 같이 읽어보세요. 죽었다가 백만 번을 다시 살아가던 고양이가 흰 고양이를 만나서 진정한 사랑을 느낍니다. 스스로의 나를 찾아가게 되지요.
결국 둘이서 알콩달콩 살다가 흰 고양이가 먼저 죽자 다시 살지 않겠다고 절규합니다. 자신의 원하는 모습을 지키고 죽어요. 만약 ‘백만 번 산 고양이’처럼 그만큼 원하는 것이라면 아들의 길을 기쁘게 응원해 주어야겠죠?
연극을 막고 싶은 이유는 불확실성과 경제적 이유 때문입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하니 그렇죠.
에릭 칼의 <아주 작은 씨앗>에는 아들을 믿어주고 가능성을 믿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나타납니다. 볼품없는 아주 작은 씨앗이 이쁜 꽃을 피울테니 있는 힘껏 믿어주고 응원해야 합니다. 아이의 모습에 상관없이 신뢰하고 응원한다면 무조건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해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씨앗은 높이 날다 햇살에 타 버리고 얼음산 위에서 꽁꽁 얼어 버려요. 하지만 아주 작은 씨앗은 계속 날아가서 꽃을 피울 수 있게 되지요. 그림책을 보면서 가족 간의 응원의 메세지를 나누고 화해의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어요.
라켈 디아스 레게라의 그림책 <난 나와 함께 갈거야> 의 주인공 소녀는 마틴이라는 소년에게 첫사랑을 느껴요.
소녀는 마틴이 봐주길 바라면서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떼어버려요. 그로 인해 마틴과 친해질 수는 있었지만 소녀는 곧 깨닫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버린 것이라는 사실을요. 결국 소녀는 자신을 찾아 갑니다. 우리의 아이들도 주변의 눈 때문에 자기가 아닌 나로 살고 있지않을까요?
A를 키우는 엄마를 보며 느낀 것은 자녀교육에 특별한 지름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나 답게’ 살도록 내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녀와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요.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교육 철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자녀교육 방법이 명문가의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톨스토이의 자녀들이 타이트할 정도로 받았던 다양한 교육 때문이 아니에요.
저의 경험을 통해 그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은 사회 잣대로 아들의 미래를 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아이의 마음을 읽고 같은 방향을 보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둘째아이의 마음을 알았더라면요.
첫째와는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지원해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엄마가 자신을 믿어주고 있다는 것을 빨리 알았더라면, 대입 과정이 더 수월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녀의 진로 문제로 고민을 가진 분들께 말해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