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다가
30년 전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혼자 살게 되었어요.
대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2년 했고 자취 생활을 1년 반 남짓하다가 통학까지, 다양한 경험을 한 저는 내심 자신이 있었지요.
첫 근무였고 어리바리한 사회 초년생이었던 저는 딱 10일 만에 엄청난 일을 만나게 되었어요.
반 아이의 앞니가 부러지는 안전사고가 생긴 것입니다. 쉬는 시간에 앉아서 놀다가 한 아이의 실수로 다른 아이의 앞니가 상하게 된 거죠.
응급 처치를 잘해서 치과로 보냈지만 다음 날 아침부터 학부모가 학교 교무실로 들이닥쳤어요.
학부모와 만나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앞으로의 치료를 생각하면 무조건 치료비를 다치게 만든 아이와 교사에게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어요.
신규로 익숙하지 않은 수업을 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져 내 삶을 꾸려야 하는데 그런 엄청난 사고가 일어나 저는 매일 아프고 피곤하여 삶이 너무 고달팠어요.
1달 정도 뒤 4월 말에 현장 체험학습을 다녀왔는데 얼마나 허옇게 떴는지 학부모 회장님이 걱정을 많이 해 주신 것이 생각납니다.
"식사는 하세요? 너무 힘들어 보이세요. 기운 내세요."
그 따스한 말에 엄마가 생각나서 펑펑 울다가 너무 열이 높고 많이 아파서 그날 저녁 동네 의원에 가서 항생제 주사와 링거를 맞고 혼자서 또 울었던 기억도 나네요.
그래도 다음 날 기어이 출근을 한 것은 왜일까요?
가끔 아플 때 이 날을 생각하면
"그때 그렇게 아파도 출근했는데 지금은 좀 아픈 거지. 그냥 출근하자."
그런 마음으로 근무했어요. 좀 나를 아끼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야 했죠. 지금 생각하면 좀 후회가 돼요. 아플 때 쉬었으면 빨리 좋아졌을 텐데.. 나를 돌아보고 덜 힘든 방법을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런 생활을 하다가 사고를 낸 아이의 학부모와 저, 학교에서 이가 부러진 학부모에게 얼마의 돈을 주는 것으로 합의를 하고 마무리를 짓기로 했어요. 그래서 모든 것이 끝나서 시원할 줄 알았는데 시원한 것이 아니라 자괴감이 들어 너무 힘들었어요.
교사라는 직업은 이런 것인가?
아이들과 공부하고 놀아주고 추억을 쌓으며 보람 있게 지내고 싶었는데 서너 달을 학부모에게 사과하고 또 사과하고 주변 선생님들께 미안해하며 지냈고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사고를 제가 감당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아요.
방황하는 마음에 책을 읽고 또 읽고. 많이 읽었어요.
그때 저는 운이 없고 능력도 없어서 교사로서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노력해서 그 일이 안 일어났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왜 그런 일을 당했을까?
과연 내년에는 안 좋은 사고가 안 일어날까?
그러다가 혼자 보게 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스러운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과거의 경험을 안고 장래까지 어둡게 본 저는 여름방학까지 제 방에 박혀서 우울했는데 몸부림치는 심정으로 우연히 보게 된 영화에서 깨달음을 얻은 거죠.
"나는 내 발로 직접 걷지 않았구나."
예쁜 칠판 글씨를 위해 서예학원에 등록하고, 머리 파마도 하고, 옷도 사고....
1학기의 경험을 다르게 해석했어요.
그 이후로 반 아이들과 진심으로 즐겁게 웃고 수업을 했어요.
비싼 수업료를 냈지만 내 마음의 굳건함은 생겼다.
아마 난 이제 학생이 다치는 사고가 생기면 잘 대처하고 내 대처 안에서 학부모와 대화해서 일을 원만하게 해결해 나갈 것이다.
그 당시 저는 시키는 대로 가만히 바라만 보았고 왜 그렇게 일이 흘러갔는지는 몰랐어요.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제 인생철학에 따라서
제 일은 제가 챙기고 어려워도 똑바로 내 발로 걸어가려고 노력하며 살게 되었어요.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는 그 당시 다양하게 화제를 불러일으킨 화제의 영화였지요. 저에게는 저를 일으켜 세운 인생의 영화입니다.
30년 동안 교사로 생활하면서 교사 정체성이 흔들릴 때, 자존감이 내려갈 때,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조용히 핸드폰에 저장된 문구를 읽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