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적 관점과 역사적 관점
우리가 체감하는 ‘인생의 시간’은 대체로 80년 내외이며, 중요한 의사결정은 30~60세 사이에 집중된다. 이렇듯 개개인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짧다. 그러다 보니, 몇 세대에 걸쳐 주기가 반복되는 거대한 호황과 불황, 그 뒤를 따르는 내전이나 전쟁, 새로운 질서의 출현 등을 직접 체감하기 어렵다. 가령 2차 세계대전 같은 전면전이나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극심한 불황은 ‘살면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와 경제 체제, 혹은 특정 화폐 체제가 영원히 지속된 전례는 없다. 과거의 경화(금·은 태환 화폐) 시스템이 1970년대 이후 연화(명목 화폐)로 전환되면서 부채 창출이 쉬워진 것도 그 예다. 한편, 새로운 통화 제도와 체제를 오래 누려 온 세대 중에는 “이 정도의 부채 확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낙관론을 갖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 역시 단편적인 경험에 근거할 뿐, 역사를 관통하는 긴 주기를 모르고서 내린 결론이라면 위험할 수 있다.
결국 경험적 관점과 더불어,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역사적 관점을 함께 가져야 미래의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대비할 수 있다. 개인의 짧은 경험은 한계가 있으므로, 몇백 년간 축적된 역사 속에서 부채와 경제의 흥망성쇠, 부와 권력의 재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우선 금융 사이클을 이해하려면, ‘부채’가 어떻게 국가나 경제를 떠받치다가 한순간에 붕괴를 초래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부채 과잉과 신용 붕괴 역사를 보면, 부채를 적절히 활용하는 단계에서는 생산성이 커지고 경기 호황이 지속된다. 사람들이 대출을 받아 소비와 투자를 늘리니 자산 가격이 오르고, 경제 전반에 활기가 넘치게 된다. 하지만 언젠가 부채의 양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채무자들이 제때 갚지 못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신용이 급격히 축소되는 시기가 찾아온다. 바로 금융위기나 신용경색이다.
자산 거품과 가치관 대립 금융 사이클은 단지 경제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빈부 격차가 커지고, 그 사이에서 이념적 대립이 첨예해질 수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전제주의 간 충돌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역사를 통틀어 자본가 계층과 재분배를 주장하는 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되풀이되어 왔다.
장기 부채 사이클의 마무리 중앙은행과 정부가 통화 발행을 통해 부채 부담을 완화하려고 시도하면,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때 투자자들은 현금이나 채권에서 벗어나 실물자산이나 다른 안전자산으로 이동하고 싶어 한다. 만약 전반적인 신뢰가 무너지는 시기가 되면, 이로 인해 금융 시스템 전체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장기 부채 사이클’이 끝난다. 1930년대 대공황 및 이후 평가절하(각국 통화의 경쟁적 가치 하락),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발발이 역사 속 대표 사례다.
결국 “부채가 늘어나는 시대”와 “부채가 꺼지거나 신용이 붕괴하는 시대”는 역사를 주기로 순환한다. 이는 국가가 호황을 맞았을 때 더욱 많은 빚을 지고, 그 결과 언젠가 한계를 맞으면 신용이 붕괴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금융 사이클뿐 아니라, 국가 내부에서는 6단계의 혼란과 재편 과정을 거치며 질서가 주기적으로 변동한다.
1단계: 새로운 질서와 권력집중 전쟁, 내전, 혁명 등으로 기존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지도자가 부상하는 시점이다. 승리자가 권력을 통합하고, 패자는 복종한다.
2단계: 자원 배분 체계와 관료 제도 구축 이제 새로 세워진 권력이 체제를 정비한다. ‘초기 번영’이 열리는 시기로, 개혁과 인프라 구축에 집중해 국민 다수가 번영의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3단계: 평화와 번영의 시기 경제가 활기를 띠고, 교육과 기술이 발전하며 부가 축적된다. 문화적·정치적 역량도 커진다. 지도자는 창조성과 비전을 보여주면서도 대외적으로 평화 유지를 모색한다.
4단계: 과잉 시대(거품번영) 오랜 번영 속에 부채가 과도해지고, 사회에 사치와 향락이 퍼진다. 겉보기엔 풍요로워 보이나, 점차 내부 균열이 커지기 시작한다.
5단계: 재정 악화와 갈등 심화 국가 재정이 악화되고, 빈부 격차가 심화되며, 갈등이 폭발적으로 커진다. 이 단계에서는 포퓰리즘, 극단주의, 언론 왜곡, 그리고 ‘계급 투쟁’이 심각해질 수 있다. 정부가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강도 증세와 지출 삭감에 나서면, 민중의 불만이 폭증하고 사회가 혼돈에 빠진다.
6단계: 혁명과 내전 최악의 경우, 내전이나 혁명으로 기존 지배층 혹은 기존 제도가 전복되면서 새로운 권력이 등장한다. 과정은 잔혹하고, 승리자만 살아남는다. 이후 새 질서가 수립되면 다시 1단계로 돌아가는 주기가 시작된다.
이런 6단계의 순환은 보통 100년 안팎에 걸쳐 한 바퀴 돈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시점에는 그 전체 흐름을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를 자세히 보면, 여러 왕조나 현대 국가들이 이 주기를 겪으면서 흥망성쇠를 반복해 왔음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