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는 왜 쌓이는 걸까. 먼지는 시간이 흐른 걸 깜빡 잊었을 때, 지나간 시간을 보여주려고 거기 내려앉는다. 이렇게 당신이 나를 방치한 동안 나는 물걸레질 한 번에 사라질 운명으로 여기 가라앉아 있습니다,라고 말하려고.
넌 말과 글에 너무 민감한 것 같아.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행동인데.
그런 말에 뭐라고 답해야 할까. 말과 행동은 같은 거라고, 다정한 말과 다정한 행동은 몸통의 앞뒷면 같은 거라고 그때 나는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말이 이미 다정하지 않았으니까.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건 사랑이 아니라 너그러움 인지도 모른다. 상대의 어떤 면이 내 생각과 다를 때의 당황스러움을 편한 관계가 된 걸로 바꿔 생각하는 능력, 달라진 온도는 진정한 친구가 된 순간이라고 웃어넘기는 호방함, 마음 아픈 일이 생겨 울 때 혼자 두고 가 버린 뒷모습을 보며 나도 그의 모든 순간을 다 알지는 못할 거라고 짐작하는 관대함.(이런 일은 정말이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이렇게까지 해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다. 이 모든 걸 감당하고 싶은가, 귀찮고 힘들어 하기 싫은가. 그 대답이 관계 지속 여부를 가르는 열쇠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너그러움은 좋아하는 마음과 비례할 테니 좀 전의 문장은 잘못된 걸지도 모르고.
소설가 은희경은 사랑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세 명의 연인은 기본이라는 내용의 소설을 썼지만 그걸 실현하는 건 소설을 쓰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다. 세 명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일보다 힘든 게 세 명과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과의 연락, 만남, 추억을 쌓고 나누는 일, 싸우고 화해하고 더 돈독해지는 일, 일상을 나누고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 상대의 슬픔을 위로하고 내 고민을 털어놓는 일, 내 기쁨을 자랑하고 상대의 행복에 귀 기울이는 일, 모든 게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일인데 그걸 동시에 두 배나 더 한단 말인가. 연애 사이사이 돈을 버는 일과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일, 세상의 변화를 놓치지 않는 일까지 해야 한다면 더 그렇다. 결국 사랑에 매몰되기로 한다.
우는 밤에 위로가 되는 건 뭘까. 끝날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은 라디오 방송, 거기 좋아하는 연주곡이 흘러나오는 일, 울고 있을지 모를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 이걸 부치려면 우표가 있어야 하는데 어디 뒀더라, 하면서 서랍을 뒤지다 울음이 마른 걸 잊는 일.
우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우는 사람을 보면 같이 울고 싶은 사람이다. 이런 기질은 같이 우는 사람에게 맞춰질 때만 송출되는 주파수 같은 거겠지. 마음껏 울 수 있는 슬픈 영화 제목을 떠올려 본다. 그러다 이런 밤엔 슬픈 영화보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더 맞을 거란 결론을 내린다.
연애 프로그램을 본다. 이런 기획이 쏟아지는 시기라고는 하지만, 왜 이렇게 여기 빠진 걸까. 시트콤이나 드라마 보듯 남의 연애 구경하는 재미라고만 하기엔 설명이 부족하다. 그게 뭔지 내내 모르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을 보던 날, 이유를 알게 된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을 보고 싶었던 거다. 누군가를 눈에 들이고, 집어넣고, 무거워 머리를 세차게 흔들다 결국 마음에 들이는 순간. 그를 볼 때 처지는 눈꼬리와 콧등의 찡긋거림, 말하지 않을 때도 살짝 벌어져 있는 입술과 그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숨기려고 애꿎은 땅만 콩콩 찧는 발끝,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과 진짜 가리키고 싶었던 것, 한 사람 앞에 놓아주려고 모두를 먹일 만큼의 요리를 하는 일. 그런 건 아무리 봐도 물리지 않는다. 모든 시작이, 모든 설렘과 반하는 순간이, 탐색과 망설임이 다 떨린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나온 연애를 잊고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에서는, 헤어진 연인이 가진 사랑의 역사를 사진과 영상으로 낱낱이 보여준다. 나는 두 번 놀란다. 둘 중 한 명이라도 그 기록을 다 간직하고 있었던 데 놀라고, 그걸 모르는 사람 수백만 명 앞에서 재생해도 아무렇지 않다는 데 한 번 더.
생생한 사랑의 사료 덕에 둘의 사랑은 마치 지금도 불뚝거리는 단단한 근육질 몸처럼 보인다. 한 팔에 한 명씩 매달려도 끄떡없을, 뼈에 살과 근육이 고루 붙은 연애다. 나 자신만큼 소중하던 사람이 인생에서 왜 사라졌는가 하는 문제는 프로그램에서 가볍게 넘어간다. 헤어지는 데 많은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 모든 이별의 이유는 관계를 지속시킬 만큼의 마음이 없는 것, 그것뿐이다. 왜 지속시키기 싫은가 하는 문제는 각자의 얼굴만큼 달라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이미 지나간 사랑이라 해도 다른 계절은 없는 것처럼 환하고 밝은 사랑의 봄 가운데 서 있는 두 사람을 보는 일은 역시 좋다. 이렇게 풋풋했구나, 이렇게 귀엽고 애틋했구나, 하면서 그들의 표정 위에 내 표정을 입혀 보는 것만으로도.
열중하던 걸 그만둔 건 다 시간의 힘 때문이다. 남의 연애를 몇 시간이나 죄책감 없이 지켜본 끝이 이건가 싶을 만큼 내상을 입는 순간이 온다. 몇 쌍의 연애 시절이 지나가고 마지막 커플의 연애 시절이 등장했을 때다. 둘은 다른 커플과 다르게 청춘의 대부분을 함께 한 사이다. 그 나이에 겪을 법한 인생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지나는 동안 서로를 누구보다 아꼈고, 모든 눈물과 웃음을 상대를 위해 바쳤다. 그런데도 지금은 남이 되어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다. 거기서부터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납득할 사유가 있다 해도 긴 만남 후의 이별이 갖는 긴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그들이 겪게 될 이후의 수순을 따라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다시 먼지. 닫아 놓고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먼지가 일어날 일은 없을 거라 믿은 곳에, 다락이나 창고나 골방 같은 데 먼지는 왜 쌓이는 걸까. 누구도 누구의 손길도 거기 닿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먼지는 희고 소복하게, 녹지 않는 눈처럼 쌓인다. 문이 열리면 와르르 일어나 지난 시간을 증명하려고. 침묵의 알리바이로 거기 있다 깨어난 마음이 없는 몸 대신 먼지로 존재를 증명한다. 불어 가고 불어오느라 재처럼 하얗게 센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