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김치, 착불도 괜찮아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대체 무엇

by 김작깨작

남이 해 준 밥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김현민, 《요즘 사는 맛 - 남이 해준 밥의 힘 중에서


그녀의 손맛을 느끼고 싶은 메뉴들

꽈리고추 멸치조림

닭볶음탕

두부조림

수제비

그중 으뜸은 단연코 총. 각. 김. 치.


내가 배추김치를 안 먹을 때라 그녀가 담근 김장의 맛은 모른다 다만, 신랑이 그녀의 겉절이나 오이소박이를 좋아했으니 아마 김장김치도 맛있었으리라


아직까지는 식당에서도 반찬가게에서도 그녀 맛의 총각김치는 찾을 수 없다 지나가다 총각무가 보이면 내가 생각나서 사게 된다고 했다 재료 손질 하는 그녀 옆에 앉아 난 입으로 거들었다


"총각무 4조각 내서 작게 잘라줘. 무 크게 자르면 먹기도 불편하고 속까지 맛도 안 들어. 그리고 무가 너무 무르면 아삭한 식감이 없어서 싫어."

그녀는 "으이구 딸아~~" 한마디 하고는 일일이 손질해서 내가 딱 좋아하는 빛깔의 총각김치를 대령해 주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외출을 꼭 하고 싶다던 그녀는 집에 와서 그녀의 남자와 김치들을 담가냈다 드라마 <식객>에서 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 날, 온갖 종류의 김치를 다 담가놓고 떠나시던데 우리 집 그녀도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이 이제야 고스란히 느껴져 이 글을 쓰면서도 울컥한다


단지 그녀가 그리워서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김현민의 저 구절을 읽는 순간, 내 마음이 이해가 되어 더욱 아련해졌다


그녀의 손 맛으로 얻었던 힘이 이젠 내게 없다 그녀의 김치 레시피를 전혀 모르니 사무치게 그 맛이 그립다 그 맛과 똑같은 것이 없으니 참 서글프다


한 해가 지날수록 생일에 미역국이 먹고 싶어졌다 생일이면 미역국을 끓여 나를 불러놓고 먹여줬던 그녀. 그녀가 떠난 후 가끔 내가 끓여 먹다 올해부터는 신랑에게 부탁했다. 남이 해 준 미역국 안 먹으니 서럽다고. 덕분에 이번 진도여행에서 진하게 끓여낸 3분 미역국을 얻어먹었다


이쯤 되니 그녀가 그리운 건지 그녀의 음식이 그리운 건지 헛갈린다 분명한 건 남이 해 준 밥에는 오묘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엄마 총각김치 좀 담가서 보내주면 안 돼? 착불도 괜찮아. 진짜 너무 먹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