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준 May 27. 2022

무무대(無無臺)

추체험의 여로

무무대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그리 맑지 않았다

청운(淸雲)동 하늘은

외눈의 렌즈 안에서

각기 다른 파스텔톤으로 네모나게 잘려나갔다

찰칵 소리와 함께

하늘의 표정은 사라졌고

그리 맑지 않은 마음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눈 비비며 맞이한 하늘도

누군가의 한숨으로 흐려지곤 했었으니

눈부신 창가도 그렇게 한숨 가득할 때가 있었다

하루도 그렇게 나도 그렇게


그 사이 하늘과 닮은 얼굴들은 구름이 되고 또 바스러졌다


어느새 가늘어진 눈가 곳곳에

불어낸 한숨들이 하나둘 내려앉아

때로는 한없이 어두웠던 시간들을 먹먹하게 덮어 주었다

하늘도 하루도 사람도

모두 흐린 순간

오늘 무무대의 하늘과 같이 아름다운 날들


무무대의 하늘은 여전히 맑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아름다움만 있을 뿐




 여느 가을 하늘을 기대하며, 무무대에 올랐지만 하늘은 그리 맑지 않았다. 맑은 바람과 하얀 구름이 더해졌다는 청운동에는 오늘따라 그 둘 다 없었다. 사람들은 둥근 눈보다 각이 진 휴대전화 렌즈로 하늘을 보고 담았다. 그리 맑지 않은 하늘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손놀림들이 분주하였다. 고작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울타리진 각자의 밭에 파스텔톤의 하늘들이 가꾸어졌다. 하늘의 우울은 형형색색으로 잘려 나갔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하늘보다 탁해진 네모난 밭들 사이로 세 명의 중년 여인이 소리 없이 거닐어 왔다. 그들의 입은 흘려보낸 젊음의 양처럼 무거웠지만 그들은 푸석해진 두 눈으로 그리 맑지 않은 하늘을 바라보았고, 그들의 손은 남들처럼 파스텔톤의 밭을 가꾸기에는 무디고 두툼하여 그저 허공에 이리저리 휘적거릴 뿐이었다. 한 여인이 휘적거리면 한 여인이 이어 끄덕거리고 또 한 여인이 이어 손짓하며 그리 맑지 않은 하늘의 형상을 온몸으로 담아내었다. 소리마저 흐린 고요함 속에 여인들은 아무 목소리도 만들어 내지 못하였고 이내 찰칵 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처지였음이 밝혀졌지만, 여인들의 몸짓은 오롯이 그날 하늘의 마음을 빚어내었다. 탁한 하늘을 헤집으며 정적의 세월과 함께해 온 그 몸짓들은 그날의 하늘처럼 흐린 나날들을 표현하는 듯했다. 소리 없이 쌓아온 한숨들이 구름 만치 불어나, 여인들의 미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나 역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눈을 가늘게 떠 무무대의 하늘을 바로 바라보았다. 집을 나설 때 흐린 하늘을 마주했던 나날들과 그날의 먹먹함들을 하나하나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여인들을 둘러싼 구름의 무게만큼은 아니어도, 내가 쉬어온 한숨들도 하나둘 불어나 흐렸던 과거의 날들을 가만히 덮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무무대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중년 여인들이 빚어낸 잿빛의 한숨들과 먹먹한 세월이 어우러진 하늘빛은 아름다웠다. 바로 옆 홀로 무무대를 찾아온, 귀에 이어폰을 꽂은 여인도 그 풍경과 썩 잘 어울렸다. 내가 불어낸 한숨으로 흐려진 하늘은 잘 어우러졌을까. 하늘을 보지 못해 고개를 떨구었던 시간들도 아름답게 어우러졌을까.


 하늘은 여전히 맑지 않았고, 무무대에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누군가의 아름다움만이 있었을 뿐.


작가의 이전글 10년 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