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몰랐나
“선생님, 저는 잘생긴 남자도 많이 사귀어 봤어요. 잘생긴 애들 만나는 거 되게 쉬운데.”
점심을 먹다가 동료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서 방법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어떻게요?”
“잘생겼다고 잘생겼다고, 자꾸 옆에서 말해 주는 거예요. 예쁜 여자한테는 남자들이 예쁘다고 하는데 잘생긴 남자한테는 여자들이 잘생겼다고 사실 안 하거든요. 나는 대놓고 자꾸 얘기해요. 잘생겼다고. 근데 쑥스러워하면서도 남자들 그런 말 좋아해요. 그러면서 이제 가까워지는 거죠.”
나는 왜 그걸 몰랐을까? 그런 방법이 있었는데 나는 왜 그걸 모르고 살았단 말인가. 원통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내가 이 방법을 알았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말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할 만큼 잘생긴 남자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나의 불우한 환경 탓을 해야 할 일이다.
칭찬은 정말 좋은 것이구나. 이런 데서도 위력을 발휘할 줄이야. 외모에 대한 칭찬이 쑥스럽긴 해도 역시 이성에게 호감을 사는 확실한 계기가 된다. 태어날 때부터 쭉 가지고 있어서 당연하게 생각되는 외모지만 역시 칭찬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정우성 배우가 나온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잘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어떠냐는 질문이 나왔다. 항상 감사하지만 ‘네, 알아요, 짜릿해, 늘 새로워’ 같은 대답을 하니 사람들이 재미있어해서 그런 말을 하면서 편하게 넘어간다고 한다. 출생 이래 지겹도록 들었을 외모 칭찬이라 대답도 참 여유가 있다.
칭찬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 옛날 사람인지 요즘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어머, 파마 하셨네요. 잘 어울려요. 예쁘다.”
“아우, 예쁘긴요. 아줌마같죠 뭐.”
옛날 사람의 반응이다.
“어머, 옷 너무 예쁜데요.”
“아우, 만 원짜리예요, 만 원짜리. 싼 거.”
옛날 사람이다.
예쁘다고 칭찬을 들으면 쑥스러워서 굳이 아줌마 같다고 자신을 깎아내리고, 묻지도 않았는데 가격까지 밝히며 옷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 옛날 사람의 반응이란다. 내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칭찬을 받고 ‘감사하다’고 반응해야 요즘 사람이라고 한다. 출근한 나를 보고 누가 파마한 머리가 예쁘다고 하면 감사하다는 말이 입에서 쉽게 나올 것 같진 않지만 요즘 사람인 척해 봐야겠다.
괄호 밖으로
칭찬을 듣는 것도 쑥스럽지만 칭찬을 하는 것도 나는 좀 어렵다. 좋다고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지나가 버리곤 한다. 내 칭찬은 마치 괄호 안에 있는 지문처럼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다.
예전에 영국인 학생이 칭찬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중국어를 배울 때 중국인 선생님이 아주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중국어로 글을 써 가면 선생님이 틀린 문장에 다 표시하고 이거, 이거, 이거 틀렸다고, 틀리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사실 거기에는 제가 안 틀리고 잘 쓴 문장이 더 많았는데요.”
지적만 받고 칭찬은 한 번도 받지 못해서 꽤 억울하고 섭섭했던 모양이다. 그 후에 선생님이 바뀌어서 영국인 선생님에게 중국어를 배울 때는 달랐다고 한다. 영국인 선생님은 항상 잘한 것에 대한 칭찬도 했기 때문에 중국어 수업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뜨끔했다. 나도 숙제를 돌려주면서 틀린 것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한다. 잘한 문장은 잘했으니 특별히 말을 안 하고 넘길 때가 많다. 칭찬에 인색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야기를 해 준 학생처럼 학생들은 자신이 잘한 부분에 대해서 칭찬을 받기 원할 텐데 내 칭찬은 자주 생략된다.
칭찬을 해야겠다. 부모님이 주셔서 보유하고 있는 잘생긴 얼굴도 칭찬을 받는데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결과물이 칭찬을 못 받으면 쓰겠는가. ‘잘한 것에 대한 칭찬’을 괄호 밖으로 모조리 꺼내서 잊지 않고 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