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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Aug 12. 2021

나쁜 말 하면 안 돼요.

모르고 한 말 & 알고 한 말

본의 아니게 한 말


선생님: 여러분, 주말에 뭐 했어요?

학    생: 고년을 봤어요.

선생님: 어..나쁜 말 하면 안 돼요. 누구를 봤나요?

   생: ‘난타’ 고년을 봤어요.

선생님: 아..공연 ㅎㅎㅎ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면서 실수를 하듯이 외국인들도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다양한 실수를 한다. 발음을 틀려서 이렇게 나쁜 말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민망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수녀님들이 ‘선교를 하러 한국에 왔습니다’라는 문장에서 받침을 틀렸는데 하필 ‘선’대신 ‘성’을 써서 선생님을 당황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학생이 정성스럽게 쓴 새해 카드에서 ‘김 생선님 좋은 년 되세요’라는 문장을 볼 때도 있다. 선생님들끼리는 그런 카드를 받으면 ‘혹시 알고 쓴 것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라’는 농담을 한다. 이런 카드는 이번 학기의 나를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된다.


알고 하는 나쁜 말


  학생들에게 추천하거나 수업 시간에 같이 보려고 영화를 찾다 보면 한국 영화에 욕이 참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욕이 안 나오는 영화를 찾으려면 힘들다. 실제로 사람들이 욕을 하니까 영화 장면에도 자연스럽게 들어갔겠지. 외국인들이 한국 영화를 보면서 한국 욕을 많이 접하겠구나 싶다.


 만국 공통으로 욕은 그 나라 말을 몰라도 감으로 알게 된다. 그래도 보다 정확하게 알아듣기 위해 조금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 누구에게 어떤 경로로 배웠는지 몰라도 한국어 욕을 배워서 어휘량이 상당한 학생도 있다.

 나처럼 돈을 받고 가르치는 것도 아닌데 누가 이렇게 욕을 부지런하게 가르쳐 준 것.

 뭐가 더 심한 욕인지 상중하를 나눠 줄 수도 없고 왜 나쁜 말인지 세세하게 설명해 줄 수도 없는 일이다. 그저 나쁜 말이니 쓰지 말라고, 그런 말을 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빠한다고 말하면서도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사실 욕은 억양과 강세, 장단음 구별 등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욕이 가진 고유의 찰진 느낌이 전달된다. 외국인이 그 어려운 것을 해낼 수 있을까? 약간만 어설퍼도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게 심하게 웃길 것 같아 생각만으로도 부끄러워다. 그런 말을 쓰지 말라고 하는 나의 말에는 어디 가서 누구랑 싸우게 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과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며 창피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두 가지 마음이 담겨 있다.


필요해서 배우는 나쁜 말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 중에는 나쁜 말을 배워야 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어 학원에서 일할 때 일본 경찰 연수반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일본 각 지역에서 온 강력반 형사들로 한국인 범죄자를 상대하는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은어와 욕을 알아들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그런 내용으로 수업을 해 줄 수 없느냐는 요청이 왔다. 학원에 전달했다는 자료를 봤는데 욕과 은어의 뜻, 예문, 특징 등이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틀린 것도 있기는 했지만 꽤 많은 분량의 표현을 마치 시사 용어를 대하는 듯한 진지한 태도로 정성스럽게 정리한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흥미로운 자료였지만 처음 듣는 표현도 있었고 수업 시간에 그런 내용을 가르치고 연습시킬 수는 없었다. 학원에서도 여자 강사들이 남자 학생들과 그런 수업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그 수업만 남자 강사를 따로 구해서 맡겼다. 수업 분위기가 항상 화기애애하고 수업 내용이 매우 유익했다고 학생들이 평했다. 연수가 끝나고 각자의 일터에서 한국인 범죄자들을 상대할 때마다 현지에서 배운 탄탄한 어휘력이 빛을 발했을 것이다.

 다른 수업은 강사들이 나눠서 했는데 수업 과정 중에 영화를 보는 시간이 있었다. 손예진, 정우성 주연의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교실에서 같이 봤다. 한참 보다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학생들은 눈물바다였고 교실에서 눈가가 뽀송한 것은 나 하나였다. 

 교실에서 만나서 실감을 못할 뿐 사실 이 사람들은 강력 범죄자 잡는 사람들인데 여리디 여린 감성을 보고 말았다.


 경찰 연수반 학생들이 일본으로 돌아간 후 나중에 전화가 한번 왔다. 학생이 근무하는 지역에서 사건이 일어나서 한국인이 사망했고 사망자 가족에게 전화 연락을 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사망 사실을 알리는 전화를 하고 나서 마음이 안 좋아서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선생님들 생각도 나서 안부 전화를 한 것이었다.

 피의자 조사나 취조를 할 때 한국어 공부한 것을 쓰게 될 것이 생각했다. 유족에게 사망 소식을 전하는 상황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전하기 참 어려웠겠다. 하기 힘든 말은 어느 나라 말로 해힘들다.

 한국어를 통해 전하는 말이 나쁜 말이 아니라 좋은 말이었으면,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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