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회사 직원이 상사에게 이메일을 쓰면서 '안녕하십니까?'라고 쓰는 게 좋을지 '안녕하세요?'라고 쓰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격식을 갖춰 '안녕하십니까?'라고 쓰려니 나이 차도 많이 나지 않고 가깝게 지내는 상사인데 너무 딱딱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 같고, '안녕하세요?'라고 쓰자니 예의를 덜 갖춘 느낌을 줄 것 같아고민이 된 것이다.
다음 날 이메일을 받은 상사가 그 직원을 찾아와서 말했다.
"야,'안녕하십세요?'가 뭐야? 일부러 그랬지, 어?"
회사에서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이 이야기를 해 줬을 때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이게 외국인이 한 실수면 하나도 안 웃겼을 텐데 한국인이 한 실수라서 웃겼다.
한국인도 '안녕하십니까?'와 '안녕하세요?' 중에서 뭘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욕설 같은 '안녕하십세요?'가 탄생했는데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경어법은 얼마나 어려울까?
외국인이 한국어 경어를 배울 때는 먼저 동사에 '-(으)시'를 넣어서 행동의 주체를 높이는연습을한다. '-(으)시'를 결합하는 법만 익히고 끝나면 좋겠지만 알아야 할 것이 많다.
나는 보통 할머니를 주어로 해서 연습시키는데 '동생이 점심을 먹습니다'라는 문장을 할머니의 행동으로 바꾸려면 주격 조사'이'가 '께서'로 바뀌는 것도 알아야 하고 '먹다'는 '드시다'라는 특별한 어휘로 바꾼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격식체와 비격식체 각각의 현재형과 과거형까지 하면 '-(으)십니다 / -(으)세요 / -(으)셨습니다 / -(으)셨어요'.거기에 '-(으)십시오 / -(으)세요' 같은 명령형도 있다. 어렵고 많다.
내가 자꾸 할머니로 연습을 시키자 어떤 학생은 자신은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안 계시는데 '-(으)시' 연습을안 하면 안 되겠냐고 했다.
'-(으)시'로 주어의 행동을 높이는 것 말고도 해야 할 것이 있다. '주다'가 나오면 내 행동을 '드리다'로바꿔야 한다. 할머니께는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드려야' 하는데학생들이 이걸 어려워한다.
요즘 시험 대비반 수업을 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어능력시험'이라는 시험이 있다. 문제 중에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을 써서 문장을 완성하는 주관식 문제가 있는데 이메일이나 안내문이 출제된다. 경어를 정확하게 사용하고 격식체를 맞게 쓸 수 있는지 확인하는 문제다.
며칠 전에 연습한 문제는 물건을 빌렸다가 돌려주려고 약속을 잡는 내용의 이메일이었다. 정답은 '언제 돌려 드리면 되겠습니까?'였지만 학생은 '언제 돌려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썼다.
경어를 쓰려고 했는데 내 행동을 높여 버렸다.
선생님께서 빌려 주시고 내가 돌려 드려야 하는데 이걸 참 많이 틀린다.
경어를 사용할 때 중요한 것은 상대와 상황에 맞는 적당한 표현을 선택하는 것이다.
요리를 할 때 소금을 얼마나 넣어야 하냐고 물어보면 요리를 많이 해 봐서 잘하는 사람은 '적당히' 넣으라고 한다. '적당히'가 얼마인가. 요리의 양과 먹을 사람의 입맛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 양이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은 나이, 직위, 유대감, 공적인 상황인지 사적인 자리인지 등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해서 '적당한' 경어 표현을 선택해서 쓴다. 외국인은 일일이 배워야 쓸 수 있다. 요리를 안 해 본 사람이 언제 소금을 한 숟가락 넣고 언제 두 숟가락 넣어야 하는지 배워서 하는 것처럼.
학생이 쓴 문장을 조금 더 정중한 느낌의 표현으로 바꿔 주었다.
'금요일에 갈 수 없습니다'를 '금요일에 가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로 바꾸고 '기간을 알려 주십시오'를 '기간을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로 바꾸면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