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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에서 Aug 12. 2021

엉덩이로 이름 쓰기

작지만 강한 '조사'

엉덩이의 용도 변경


 나처럼 한국어를 가르치는 친구 이야기를 다가 조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친구가 학생들과 게임을 하면서 ‘엉덩이로 이름 쓰기’를 알려 주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벌칙으로 하는 것인데 오늘 게임에서 지는 사람은 ‘엉덩이로 이름 쓰기’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런데 게임이 끝나고 벌칙을 받게 된 남학생이 괴로워하며 앞으로 나와서 이름을 쓴 순간 모두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그 학생이 갑자기 검지 손가락을 자기 엉덩이에 대더니 거기에 이름을 썼기 때문이다. 엉덩이‘로’ 이름을 써야 하는데 엉덩이‘에’ 이름을 쓴 것이다. 한국어에서는 조사가 이렇게나 중요하다.      


우리는 조사 ‘(으)로’를 도구, 수단, 방법을 나타낼 때 쓴다.

예) 기차 갔다. 젓가락으로 먹는다, 볼펜 쓴다.   

   

그리고 조사 ‘에’는 장소를 나타낼 때 쓴다.

예) 학교 간다. 책상 위 놓았다. 공책 이름을 쓴다.    

 

 ‘엉덩이로 이름 쓰기’에서는 엉덩이가 이름을 쓰는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이름을 쓰는 ‘장소’로 잘못 쓰여서 예상치 못한 큰 웃음을 줬다. 어차피 이 벌칙의 목적은 보는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 주는 것이므로 나름 성공적인 벌칙 수행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만치 않은 조사


 한국어의 특징을 말할 때 조사가 발달했다는 점을 든다. 한국어에는 다양한 조사가 있고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도 기초 단계부터 조사를 배우기 시작한다. 다양한 한국어 조사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구별해서 쓸 수 있어야 엉덩이에 이름을 쓰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모국어에도 조사가 있는 학생들에게는 조사를 배우는 것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조사라는 개념이 낯선 학생들도 있다. 그런 학생들은 조사를 빠뜨리고 명사만 나열할 때가 많아서 학생들이 만든 문장에 열심히 조사를 끼워 넣는 일이 나의 주요 업무가 된다. 모국어에 없어서 익숙하지 않은 것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하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영어를 배울 때 이런 건 왜 있어서 나를 고민하게 만드나 투덜대며 ‘a’와 ‘the’ 중에서 열심히 골라 봤지만 빠뜨리고 안 쓰거나 썼는데 틀릴 때가 많았다. 뭔가 허전한 나의 문장에 영어 선생님이 관사를 일일이 넣어 주시고 단수, 복수를 열심히 수정해 주신 기억이 난다.

 외국인들이 한국어 조사를 배울 때는 의미도 알아야 하지만 제대로 결합하는 방법도 익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주격 조사를 제대로 쓰려면 ‘이’와 ‘가’ 중에서 뭘 결합해야 하는지까지 알아야 한다. ‘이/가’를 가르칠 때 받침이 없이 모음으로 끝나는 명사 뒤에는 ‘가’, 받침이 있어서 자음으로 끝나는 명사 뒤에는 ‘이’를 붙여야 한다는 규칙을 설명하고 연습시킨다. 어느 정도 연습을 하고 나면 물어본다.

‘책상이? 책상가?’

50%의 확률 속에서 학생이 자신 있게 ‘책상가’를 선택해 버리면 슬슬 걱정이 된다. 앞으로 이어질 ‘은/는’, ‘을/를’, ‘와/과’ 등의 선택의 기로에서 이처럼 방황하다가 결국 한국어 공부에서 멀어지진 않을까.

 한국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엄마가’ ‘아빠가’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까지는 문제 없이 하다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선생님이가’라고 말하는 걸 보면 ‘이/가’ 중 하나 골라 제대로 결합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단어가 모음으로 끝나는지 자음으로 끝나는지에 따라 다르게 결합하는 것. 우리가 이 어려운 것을 의식하지 않고 매일 하고 있다.

  사전에서 조사의 뜻을 찾아보면 ‘체언이나 부사, 어미 따위에 붙어 그 말과 다른 말과의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거나 그 말의 뜻을 도와주는 품사’라고 나온다. 한국어에서 조사는 앞에 있는 말이 주어인지 목적어인지도 알려주고, 문장을 연결하고, 의미를 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사는 작지만 엉덩이를 순식간에 글을 쓰는 도구로 만들 수도 있고 글을 쓰는 장소로도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학생들이 쓴 문장에 수없이 많은 조사를 끼워 고 틀린 조사를 바꿔 왔다. 조사만 없었으면 나의 업무량이 확 줄고 일이 훨씬 수월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조사 하나로 의미가 달라지고 뜻이 명확해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방금 문장을 쓰면서 조사를 고민했다. ‘재미 있다’라고 쓸까, ‘재미있다’라고 쓸까. 이러니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 조사가 어렵다고 하지. 이게 뭐가 다른지 알려면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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