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에서 Jul 29. 2022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각자의 저울

미드를 즐겨 보는 선생님이 한국 드라마와 미국 드라마의 차이점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미국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위기에 빠져 시련을 겪게 되면 '이건 공정하지 않다'라고 사회에 분노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반면 한국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곤경에 처하면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라며 사람에게 분노할 때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한국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대사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상대가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생각하는 수준이 있는데 실제 반응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이 대사가 나온다.

그동안 내가 상대에게 베푼 것이 많고 어려울 때 도움도 주었으므로 상대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줄 것이라 기대를 한다. 그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커지고 실망은 서운함을 넘어 분노로 표출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람들과의 관계중요한 것은 맞지만 한국 사람은 특히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친밀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사회가 공정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없어 '공정하지 않다'는 말 안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슬픈 추측 하게 되었다. 


 한국어 교재에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한다는 말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내 집, 내 학교, 내 부모님' 대신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부모님'과 같이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유하면 안 될 것 같지만 '우리 아내, 우리 남편'이라는 말도 쓴다.  


한국 사람들은 '내꺼 니꺼'를 따지면 야박하고 정이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쉽게 '우리'가 되려고 한다.

요즘 MZ세대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유학을 가면 다른 나라 학생들처럼 각자 식재료를 사지 않고 한국인 학생들 여럿이 돈을 모아 '우리의 쌀'을 사고 '우리의 식재료'를 사곤 했다. 그리고 그러다가 꼭 분란이 나고 싸움이 났다. 서운해지는 사람이 생기고 내가 손해 보는 기분이 들 때가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람들을 대할수록 인간관계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다해 잘해 주다가도 어느 순간엔 상대방이 그 마음을 알아주고 나에게도 그렇게 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슬그머니 생겨 버린다.

사람의 마음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객관적인 수치로 측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서로가 서로 얼마나 아껴 줬는지,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깝고 친한 사이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내가 잘해 준 만큼  돌려받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지만 각자의 저울로 달아본 '만큼'라는 단위는  차이가 크다.




언젠가부터 스스로 확인해 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되돌려 받지 못해도 서운해지지 않을 만큼 마음을 주고 있는가. 서운해질 정도까지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좋은 사람들과 오래오래 잘 지내고 싶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