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에서 Sep 23. 2021

‘안’과 ‘못’ 사이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팔을 뻗어 신속하게 알람을 끄고 이불을 다시 당겼다. 분명히 어젯밤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씻고 밖에 나가서 여러 가지 일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알람 소리가 들렸을 때 그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불 속이 너무 포근하고 좋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수업 시간에 부정형 ‘안’을 가르치고 나중에 ‘못’을 가르칠 때 둘의 차이를 설명한다.  

 “‘못’은 ‘안’과 달라요.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할 수 없을 때 '안 해요'가 아니라 '못 해요'라고 해요.”

 며칠 전에도 그렇게 가르쳤는데  아침에 이불을 당기면서 이건 ‘안 간 것’과 ‘못 간 것’ 사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예전에 박사 논문을 쓰느라 한동안 바빴던 동료 선생님이 있었다.

어느 날 다른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 선생님은 논문 끝났대요?"

"논문 심사에 안 냈다고 하던데요. 지도 교수님도 내라고 하셨고, 내면 낼 수 있는데 자기가 만족이 안 돼서  냈대요." 들은 대로 전했다.

"논문을  다는 거네요. 그러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안'을 '못'으로 번에 정정 버렸다.

 

 누구는 안 했다고 말하고 누구는 못 했다고 말했지만 어떤 일을 할 때 100%의 '안'이나 100%의 '못'인 경우보다는 두 가지가 섞여 있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한 것이면서 못 한 것이고, 못 한 것이면서 안 한 것이도 하다.

‘안’이나 ‘못’ 말고 ‘안과 못 사이’ 같은 것도 하나 있어야 할 것 같다. 안 80%에 못 20%, 안 40%에 못 60%. 이런 으로 두 가지가 섞여 있는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한국말도 으면 좋겠다.


 집을 구하러 갔을 때 동네에 불광천이 있어서 운동하기에도 너무 좋다는 중개인의 말에 솔깃했다. 거기에서 내가 활기차게 조깅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이 동네로 반드시 이사를 와야 할 것 같았다.

 이사를 하자마자 운동화와 운동복을 주문하고 매일 저녁 나가서 달렸다. 여기로 이사 온 덕분에 나는 이제 건강까지 얻게 되었다 나의 선택을 스스로 칭찬했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덥고 춥고 미세먼지가 심하고 피곤하고,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으로 만들어 줄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전에 살던 동네에 조깅할 곳이 없어서 내가 달리지 못 것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잠시 잊고 있었지만 아주 예전에 요가열심히 다. 요가 학원을 년 정도 꾸준히 다니다가 동작도 다 알고 집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등록하지 않았다.

 집에서 요가를 하니까 학과 집오가는 시간 절약할 수 있어 좋았다. 끝나고 바로 샤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찾아냈다. 그러나 학원에서 할 때와 달리 집에서는 쉬운 자세만 골라 하게 되, 자세를 유지 상태로 나, 둘, 셋 , 넷 시간을 세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간이 지나면서 가를 하는 날보다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떤 날은 안 했고 어떤 날은 사정이 있어 못 했지만, 안 한 건지 못 한 건지 구분하기 애매한 날도 많았다.

결국 요가 매트는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자고 갈 때 이불 밑에 깔아주는 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요가 학원과 헬스클럽이 존재한다. 운동을 '안' 하려는 사람은 그런 곳에 얼씬도 안 하겠지만 동작을 몰라서 ''하는 사람 기꺼이 배우러 간다. 그리고 나처럼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닌데 혼자서는 안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렇게 '안'과 '못' 사이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있어 요가 학원이나 헬스클럽의 회원 수가 준히 유지나 보다.


 요즘은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동영상 강좌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학원비보다 훨씬 저렴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학생 때부터 인강 하면서 그런 방식으로 수업을 듣는 것이 람들에게 익숙한 일이 되었다.

 대가 바뀌었으니 으로 학원도 없어지고 나처럼 현장에서 가르치는 강사도 필요 없어질까? 그런 걱정한 적도 있지만 나처럼 ''과 '못' 사이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 믿는다. 리가 있는 한 학원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전 01화 돈과 나이의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