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봉투에 쓰레기가 꽉 차지 않았는데 내가 묶어 버렸다는 것이 부잣집 딸로 추정되는 근거였다. 자기 집에선엄마에게 등짝을 얻어맞을 일이라고 했다.
"제가 부잣집 딸이면 이런 좁은 원룸에 안 살죠."
"서민 체험"
아, 진짜 서민 체험이면 좋겠다. 무슨 체험이이렇게 장기적으로 계속되냐.
평생서민의 삶만 체험 중인 나는 부잣집 딸이 아니라 딸 부잣집 넷째 딸이다.
추측 문장을 완성하는 숙제를 검사해 보면 생각보다 추측의 근거가 다양하다.
'-(으)ㄴ/는 걸 보니까 부자인 모양이다'라는 문장에서 학생들이 든 근거는 '휴대폰이 두 개인 걸 보니까, 쇼핑을 자주 하는 걸 보니까, 매일 택시를 타고 오는 걸 보니까' 등이 있었다.
친구는기름종이를 명품 브랜드 제품으로 쓰는 사람을 보고 진짜 부자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했다. 샤넬이라고 했던가 구찌라고 했던가. 그런데 정말 거기서 기름종이제품이 나오는 것이 맞을까? 명품 기름종이는뭐가 좀 다른가?
나는 돈이 없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을 보고 부자일 거라고 추측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매점이 가자고 했을 때 한 친구가 돈이 없다고 했다.보통 매점에 갈 돈이 없을 때 나는 안 먹고 싶다고 했다. 나와 달리 돈이 없어서 못 간다고 말한 그 친구는 내 예상대로 부잣집 딸이 맞았다.
얼마 전에 '하차감'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승차감보다 중요한 것이 차에서 내리는 나를 사람들이 쳐다보는 느낌인 하차감이라고 한다. 친구에게 말하니 이미 많이들 쓰는 단어란다. 그리고 타는 차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말도 했다. 좋은 차를 타고 나가면 도로에서 뒤차가 빵빵거리는 횟수나 간격이 다르고 주차를 맡길 때 사람들의 태도가 다르다고 한다.
운전을 안 하는 나는 체감을 못했지만 그런 경험이 쌓이면 고급차를 타고 싶은 열망이 강해질것 같다. 집은 사기에 너무 비싸고 차는 그래도 살 수 있는 범위에 있다. 집이 이렇게 계속 저 멀리에 있으면 부자로 오해받을 수 있는 하차감 좋은 차의 판매만촉진되겠지.
부에 대한 관심이 높고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라서 부자 관련 콘텐츠도많다. 돈이 얼마나 있어야 부자인지 모르겠다.부자에게는 '○억 자산가' 이런 수식어가 붙던데 그런 금액은 어차피만져 본 적이 없어서 '0'이 하나 더 있고 덜 있어도 별로 와닿지 않는다. '부자가 되는 방법', '부자들의 특징' 같은 제목에 끌려 나도 모르게 유튜브 재생 버튼을 누르다가 깨달았다. 부자는 이런 게 궁금하지 않겠구나. 부자도 더 큰 부자가 되는 것에 관심이 있겠지만 방법이나 특징쯤은 이미 꿰고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