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못’ 사이

by 정원에서

늘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팔을 뻗어 신속하게 알람을 끄고 이불을 다시 당겼다. 분명히 어젯밤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씻고 밖에 나가서 여러 가지 일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알람 소리가 들렸을 때 그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불 속이 너무 포근하고 좋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수업 시간에 부정형 ‘안’을 가르치고 나중에 ‘못’을 가르칠 때 둘의 차이를 설명한다.

“‘못’은 ‘안’과 달라요. 하고 싶은 마음은지만 할 수 없을 때 '안 해요'가 아니라 '못 해요'라고 해요.”

며칠 전에도 그렇게 가르쳤는데 늘 아침에 이불을 당기면서 이건 ‘안 나간 것’과 ‘못 나간 것’ 사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예전에 박사 논문을 쓰느라 한동안 바빴던 동료 선생님이 있었다.

어느 날 다른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 선생님은 논문 끝났대요?"

"논문 심사에 안 냈다고 하던데요. 지도 교수님도 내라고 하셨고, 내면 낼 수 있는데 자기가 만족이 안 돼서 냈대요." 들은 대로 전했다.

"논문을 다는 거네요. 그러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안'을 '못'으로 번에 정정 버렸다.

누구는 안 했다고 말하고 누구는 못 했다고 말했지만 어떤 일을 할 때 100%의 '안'이나 100%의 '못'인 경우보다는 두 가지가 섞여 있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한 것이면서 못 한 것이고, 못 한 것이면서 안 한 것이기도 하다.

‘안’이나 ‘못’ 말고 ‘안과 못 사이’ 같은 것도 하나 있어야 할 것 같다. 안 80%에 못 20%, 안 40%에 못 60%. 이런 식으로 두 가지가 섞여 있는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한국말도 있으면 좋겠다.


집을 구하러 갔을 때 동네에 불광천이 있어서 운동하기에도 너무 좋다는 중개인의 말에 솔깃했다. 거기에서 내가 활기차게 조깅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이 동네로 반드시 이사를 와야 할 것 같았다.

이사를 하자마자 운동화와 운동복을 주문하고 매일 저녁에 나가서 달렸다. 여기로 이사 온 덕분에 나는 이제 건강까지 얻게 되었다고 나의 선택을 스스로 칭찬했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덥고 춥고 미세먼지가 심하고 피곤하고, 운동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으로 만들어 줄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전에 살던 동네에 조깅할 곳이 없어서 내가 달리지 못한 것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잠시 잊고 있었지만 아주 예전에 요가를 참 열심히 했다. 요가 학원을 일 년 정도 꾸준히 다니다가 동작도 다 알고 집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등록하지 않았다.

집에서 요가를 하니까 학원과 집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좋았다. 끝나고 바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찾아냈다. 그러나 학원에서 할 때와 달리 집에서는 쉬운 자세만 골라서 하게 되, 자세를 유지 상태로 나, 둘, 셋 , 넷 시간을 세는 속도가 우 빨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간이 지나면서 가를 하는 날보다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떤 날은 안 했고 어떤 날은 사정이 있어 못 했지만, 안 한 건지 못 한 건지 구분하기 애매한 날도 많았다.

결국 요가 매트는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자고 갈 때 이불 밑에 깔아주는 것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요가 학원과 헬스클럽이 존재한다. 운동을 '안' 하려는 사람은 그런 곳에 얼씬도 안 하겠지만 동작을 몰라서 '못'하는 사람 기꺼이 배우러 간다. 그리고 나처럼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닌데 혼자서는 안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안'과 '못' 사이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있어 요가 학원이나 헬스클럽의 회원 수가 준히 유지나 보다.


요즘은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동영상 강좌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학원비보다 훨씬 저렴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학생 때부터 인강을 하면서 그런 방식으로 수업을 듣는 것이 람들에게 익숙한 일이 되었다.

대가 바뀌었으니 으로 학원도 다 없어지고 나처럼 현장에서 가르치는 강사도 필요 없어질까? 그런 걱정을 한 적도 있지만 나처럼 '안'과 '못' 사이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믿는다. 리가 있는 한 학원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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