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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Aug 31. 2024

딸이 만들어 준 쿠폰

나는 어렸을 때 생일에 큰 의미 부여나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딸의 생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딸아이가  자기 생일이 며칠 남았다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내가 자기 생일을 알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상기시켜 주는 것은 미리미리 선물을 준비하라는 압박이었다.

 

 생일이 되면  케이크를 사서 촛불을 켜놓고 박수를 치며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야 했고 아이가 원하는 선물을 사줘야 했다. 자발적이지 않고 아이의 성화에 떠밀려 생일을 준비했지만  아이가 좋아하니 나도 좋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면서는 생일 외에 어린이날에도 선물을 사줘야 했다.


 꼭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아이가 사달라고 하는 것이 있으면 사줬지만 생일이나 어린이날에는 선물을 사달라고 조를 필요 없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아야 한다는 식이었고 선물에 대한 기대치도 컸다


나는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흔쾌히 아이가 원하는 선물을 사줬다. 유치원 다닐 때 아이가 원하는 선물은 인형과 장난감이었다. 이런 것은 보통 2-3만 원선에서  살 수 있었기에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원하는 선물의 수준이 달라졌다. 그건 게임기의 일종인 닌텐도였다. 닌텐도는 게임기도 비싸지만 게임별로 게임칩이 있어이걸 별도로 사야 했는데 칩 하나의 가격이 4~6만원대로  비쌌다.

칩하나에 하나의 게임만 들어있기 때문에 하나의 게임이 싫증이 나면 또 다른 게임기 칩을 사달라고 했다. 생일이나 어린이날에만 사달라던 선물을 크리스마스 때도 학교에서 상을 받았을 때도 여러 명분을 만들어 닌텐도 칩을 사달라고 했다.  하나하나 늘어나는  닌텐도칩을 보며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게임을 하는 시간도 칩을 사는 돈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가 워낙 좋아하고 사달라고 졸라대니 사줄 수밖에 없었다.

생일케이크 앞에서 즐거워하는 딸과 닌텐도 칩

아이가 나에게  선물을 사달라고 요구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도 어버이날이 되면 감사편지와 선물을 줬다. 선물은 과자와 종이로 직접 만든 쿠폰이었다. 쿠폰 내용은 안마 쿠폰, 놀아주기 쿠폰, 심부름쿠폰, 같이 책 읽기 쿠폰, 청소쿠폰 등 종류가 다양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기한이 있었다. 하루라도 늦으면 쿠폰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쿠폰 유효기간 내에도 쿠폰을 사용하려고 하면 자꾸 미루며 다음에 해준다고 했고 그마저도 쿠폰 사용 기간이 하루만 지나도 냉정하게 사용을 거절했다. 어차피 쿠폰사용이 목적이 아니고 쿠폰자체에 의미가 있었기에  쿠폰사용이 미뤄지고 거절돼도 기분이 좋고 즐거웠다. 쿠폰을 쓸 수 있든 없든 쿠폰 자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좋았다. 나에게 가장 크고 의미 있는 선물은 아이가 건강하고  즐겁게 잘 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자 선물과 편지

중 · 고등학생 때부터는 어린이날에 선물을 사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버이날에 편지나 쿠폰을 주지 않았다. 조금 아쉬웠지만 억지로 받을 수는 없으니 그러려니 했다. 어버이날 나를 기쁘게 해 주던 딸의 감사편지와 쿠폰선물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딸아이가 대학생이던  2023년 어버이날이었다. 어버이날 감사편지를 아내와 나에게 따로따로 줬다. 편지봉투를 열어보니 감사의 내용이 있는 편지 삼만 원이 있었다. 돈을 벌지도 않는데 돈이 봉투에 넣어져 있어서 어떻게 마련한  돈인지 물어봤다. 아이는 용돈을 모아서 준비했다고 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항상 어린애로만 생각되었는데 부모에게 용돈을 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언제 이렇게  성장했는지 기특하고 대견했다.


어릴 때는  아기자기하고 장난스러운 쿠폰으로, 성장해서는 용돈으로  부모에게 무엇인가를  주고자 하는 마음이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게 참 고마웠다. 딸의 이런 마음처럼  딸이 어릴 때 만들어 준 다양한 쿠폰과 편지는 내 맘속에서 유효기간이 없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사랑의 기억으로 변치않고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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