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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후감

안중근이 듣고 싶었던 말

소설 '하얼빈'을 읽고

by 하늘소망

2024년 12월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하는 '하얼빈'영화가 개봉되었다. 안중근을 소재로 2022년 개봉한 뮤지컬 영화 '영웅'을 감명 깊고 재밌게 봤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화보다도 김훈 작가의 '하얼빈'소설에서 감동을 느끼고 정의로웠던 역사의 한 장면을 보고 싶었다.


소설의 첫 시작은 대한제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순종이 황제였지만 이토 히로부미가 통감이 되어 조선을 내정간섭하고 을사늑약의 정당성을 홍보하려는 상황이 묘사된다. 안중근은 의병활동을 하다가 이토의 만행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를 사살한다. 1910년 여순 감옥에 갇힌 안중근은 자기의 일대기가 담긴 책을 탈고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안중근은 본인의 시체가 하얼빈에 묻히길 바랐지만 일본 관동도독부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여순감옥 공동묘지에 묻어버린다. 안중근에게 세례를 줬던 빌렘신부가 신자들과 함께 망자를 위해 기도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주된 줄거리는 내가 알고 있는 내용대로 흘러갔다. 이 소설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한 내용은 빌렘이라는 가톨릭 신부와 안중근과의 만남이었다.

안중근은 의병활동을 하려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기 전에 빌렘신부를 찾아가 작별 인사를 했다. 빌렘신부는 러시아에 가지 말고 조선에서 교육사업을 하라고 했지만 안중근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죽을 수도 있는 전쟁터에 가는 건 누구에게나 피하고 싶고 두려울 것이다. 러시아에 가지 말라는 빌렘신부의 말은 안중근 스스로에게 죽음의 공포를 피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과 탈출구가 될 수 있었지만 이를 외면했다. 그렇다면 안중근은 빌렘신부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었을까? 빌렘신부와의 다음 만남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안중근은 이토 살해 후 체포되어 옥중에 있을 때 빌렘신부를 다시 만났다. 면회를 온 빌렘신부에게 위로를 받으며 자신의 영혼을 빌렘신부에게 의지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빌렘신부는 안중근에게 죄의 성찰과 뉘우침을 요구했다. 안중근은 이토의 목숨을 없앤 것은 죄일 수 있지만 이토의 작용을 없앤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리고 이토를 쓰러뜨리고 나서 세례 받던 날의 빛과 평화가 떠올랐다고 했다. 발렘신부가 찾아내지 못한 영혼의 평화를 본인 스스로 찾아낸 것이다.


빌렘신부가 종교적 정죄보다는 지치고 상한 영혼의 위로와 평안에 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안중근은 좀 더 평안하고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종교적 행위나 규율 보다는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셨던 예수님의 가르침이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이번 소설로 지금까지 봐왔던 안중근의 영웅적인 외면의 모습을 너머 섬세하고 여린 안중근의 내면을 볼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가족에 대한 걱정 보다도 민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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