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이 제주 4.3 사건이 소재라고 했다. 제주도에서 군인, 경찰이 민간인을 많이 학살했다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이 소설로 4.3 사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고, 한강 작가가 이 아픈 과거의 시간을 어떻게 글로 그려냈는지도 알고 싶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1인칭 화자인 경하와 친구 인선이다. 경하는 한강 작가 본인을 소설 속에 이입시켜 놓은 듯했고 4.3 사건을 의미하는 듯한 꿈을 꾸고 그 꿈의 실체를 찾으려고 한다. 인선은 4.3 사건을 겪은 어머니가 있었고 그 어머니의 기억과 삶 속에서 4.3 사건의 진상을 알리려고 한다.
이 두 등장인물의 대화 속에서 그 사건의 실체와 아픔이 느껴진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되는 대화는 4.3 사건이 시간을 초월하여 지금도 진행 중인 것처럼 느끼게 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고 말한 한강작가의 과거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었다.
한강 작가는 과거를 지나가버린 것이 아닌 현재가 가는 곳마다 계속 뒤따라오는 그림자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경하가 인선의 영혼과 대화하는 상황에서는
'죽은 자가 산자를 살릴 수 있는가?'라고 말한 한강 작가의 죽음과 영혼에 대한 생각도 엿볼 수 있었다. 인간이 죽으면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고 썩어서 없어지는 육체와 달리 영혼은 소멸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새는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한강 작가가 새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생각해 봤다.
좌우에 눈이 있어 시야가 넓은 새는 촛불 앞에 있는 실체와 벽에 비치는 그림자 사이에 있을 때, 그림자와 그 그림자를 만드는 실체를 다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시야가 좁아 좌우 한쪽만 바라볼 수 있어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다가 실체를 보려면 고개를 돌려야 한다. 하지만 보기 싫은 쪽이나 불편한 진실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새의 시각과 비교하며 자각하게 하려 한 것 같다.
경하가 벽에 만들어지는 새의 그림자 윤곽을 샤프펜슬로 그리는 내용은 그림자와 같은 허상을 쫓는 왜곡된 이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본질을 먼저 찾아보라 말하는 듯하다.
이 소설로 제주 4.3 사건이 제주도에서만 끝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육지 교도소로 이송되어 학살당했다는 사실도 알았다. 머릿속 작은 이념들이 무리를 이뤄 학살이라는 처참한 일이 발생한 것이 무섭고 안타까웠다.
오랜 시간 동안 물을 먹지 못해 죽어버린 인선이 기르던 앵무새 아미의 죽음에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본다. 자기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고
다양성이라는 물을 먹지 않아 우리 사회가 병들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부터 돌아보게 한다.
손가락이 끊어져 봉합수술을 하고 봉합이 잘되게 하기 위해 3분마다 바늘로 찔러 피를 흘려야 하는 고통 속에서도 앵무새 아미에게 물을 주려했던 인선의 다급함과 간절함이 하나의 배타적 이념만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라는 비유적 성찰로 다가오고 그 앵무새 아미에게 물을 주기 위해 눈에 빠져 뒹굴면서도 새가 있는 집을 향해 가는 경하의 모습이 숭고하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