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일하지만 매일 울며 출근하는 마음 아픈 간호사 이야기
이브닝을 하고 온 룸메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방으로 들어왔다.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원래라면 밤 11시에 마쳤어야 하는 일을 4시간의 오버타임을 하고 퇴근을 한 것이다.
축 처진 어깨와 힘없는 눈빛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룸메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오늘도 고생했어” 뿐이었다.
5일 근무를 끝내고 아침에 눈을 뜬 룸메가 연신 한숨을 쉬길래 걱정이 되어 물었다.
“OO아, 어디 아파?”
“아니.. 왜..??”
“계속 한숨도 쉬고 힘이 없어 보여서.. 괜찮아..?”
“휴.. 몸은 괜찮은데.. 마음이 아파..”
그렇게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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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간호사 한 명당 10~15명 정도의 환자를 보는데, 중증도 높은 환자 4명으로 구성된 한 병실은 한 명의 간호사가 담당한다고 했다.
올해로 3년 차 간호사가 된 룸메가 해당 병실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의 하루하루가 너무나 버겁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브닝 하는 4일 내내 새벽 3시에 퇴근했어.. 오늘은 나이트 끝나고 9시에 퇴근하고.. 그런데도 매일 혼나.
나도 뭘 해야 하는지, 뭘 기록해야 하는지 다 알아. 아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인계시간 전까지 다 할 수가 없어..
그런데 인계받는 선생님은 내가 어떤 일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모르면서 처방 한 개 못 거른 걸로 나쁘게 말을 하는 거야..”
듣는 내내 정말 속상했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기에 룸메의 말에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일이 힘들 때도 많지만 사람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왜 하는지 100% 이해할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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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자도, 저 환자도 다 보러 가고 싶은데 내 몸은 한 개니까 그럴 수가 없잖아...
어떤 분은 가래가 엄청 많아서 suction을 30분에 한 번씩은 해줘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1시간에 한 번도 겨우 해줘.
인공호흡기에 가래가 점점 차는 게 보여서 suction을 해주고 싶어도 나는 다른 환자한테 해줘야 할 일도 아직 많아서 갈 수가 없어..
그러다가 환자 aspiration(사레들리는 것)돼서 넘어가면 어떡해??
이러다가 진짜 환자 한 명 죽일까 봐 무서워.. 못하겠어..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룸메는 참고 참던 눈물을 결국 쏟아냈다.
처음 해보는 처치도 있고 몇 년 전에 해본 거라 기억이 안나는 것도 있는데 어떤 선생님은 “왜 이걸 모르냐, 좀 찾아보면서 해라” 하면서 혼내.
나도 다 알고 일하고 싶어. 미리 알았으면 공부도 했을 거야. 근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니까 다 내가 부족해서인 거 같고, 다 내 잘못 같아..
매일 자존감이 바닥이고.. 매일 울어..”
병원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간호사를 많이 봤다.
대충 하기보다 제대로 하려고 하고,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식사나 휴식을 제쳐두고 그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일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본 나의 룸메도 그런 간호사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간호사가 인력부족, 시간부족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더 잘 간호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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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
한참을 고민하던 룸메는 웃음기가 전혀 없는 해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힘들다고 말하려면 말할 수는 있겠지만.. ”
“말했을 때 또 어떤 소문이 이상하게 돌지 걱정돼서 말 못 하겠지..?”
“응 맞아.. 그리고 일하다가 혼자 하기에 벅찰 때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것도 못하겠어.
도움을 요청하면 짜증내거나 화내는 선생님이 있는데.. 신규 때부터 봐온 게 쌓이다 보니까 말을 걸 수가 없어..”
룸메가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왜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도 일을 하며 똑같은 생각을 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해 망설인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그 병동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병원마다, 그리고 각 병동마다 부서의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
어떤 곳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함께 개선해가려고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후배의 어려움을 후배의 잘못으로 돌리며 오히려 나쁜 소문으로 퍼지게 하는 곳도 있는 것 같다.
부서 내 선생님들도 동료로서 존중해 주고 도와주며 위로해 주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그저 자신의 밑에 있는 사람으로 여기며 무시하고 괴롭히는 선생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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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근심 가득했던 룸메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그리고는 흘리던 눈물을 금방 닦아내더니 운동을 하러 갔다가 저녁으로 치킨을 시켜 먹어야겠다고 말했다.
룸메의 엄청난 태세전환에 눈이 마주친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렇게라도 웃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우리의 짧은 대화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힘든 마음을 꽁꽁 감춘 채 묻어두고 있었을 나의 룸메에게,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하며 힘들어하고 있을 수많은 간호사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