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만난 세계

나의 말. 06

by 달님

2024년 연말 공연으로 선택한 것은 지브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콘서트였다.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와 <이웃집 토토로>를 사랑하는 딸에게 줄 선물로 몇 달 전에 미리 표를 사 두었다. 우리는 공연 프로그램에 나온 곡을 찾아 들으며 예습하고, 피아노를 배운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은 딸도 칠 수 있을 만큼 만만해 보이는 악보를 찾아 연주도 해보며 공연을 기다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12월 14일 오후 다섯 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통과 여부가 결정되는 그날, 그 시간에 공연이 시작된다. 여의도로 나가지 않고 공연을 보는 게 옳은가, 남편과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한 인간의 어리석음이 평범한 가족의 일상마저 흔들고 있었다. 아이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나는 TK의 딸이다. 경북의 한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친척들은 대부분 대구나 그 언저리의 작은 도시에 모여 살았다. 몇 해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시제사와 기제사를 다달이 한두 번씩 지내는 전형적이고 보수적인 경상도 집안, 그게 우리 집이다. 명절이나 제사 때면 남자 어른들은 큰 상을 펴고 온종일 술을 마시거나 화투를 쳤고, 여자들은 방에서 먹고 물린 상에 남은 음식을 모아 대접에 밥을 비벼 함께 먹은 후 상을 치우고 다시 차리기를 반복했다. 동생은 아빠 옆에 앉아서 새로 차린 밥상을 받는데, 나는 왜 부엌 구석에서 젓가락으로 다 헤집어 놓은 생선이나 먹어야 하나. 어린 내가 상 위의 닭다리에 손이라도 델라치면 할머니는 손등을 찰싹 때렸다. 얼큰해진 남자 어른들은 DJ가 어쩌고 YS가 저쩌고, 알 수 없는 이름들을 평하며 네가 맞다, 내가 맞다 목소리를 높였다. 이야기는 박정희가 나라를 어떻게 살리고 키웠는지로 이어지다가, 그의 딸이 얼마나 가엾고 안쓰러운지로 흘러갔다. 누군가는 전두환 그 양반도 정치는 잘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다른 누군가가 맞장구치다가, 민노총 새끼들과 빨갱이 전교조 놈들을 욕하며 술자리는 절정에 다다르곤 했다. 만날 때마다 반복하는 이야기를 매번 처음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듯이. 머리가 굵어지고 들은 것이 늘면서 나는 조금씩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계집애이므로 감히, 버르장머리 없이, 어른들 앞에서 입을 놀릴 수 없었다. 발언권이 있었대도 반대 의견은 용납되지 않았을 거다. 그들은 종교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믿음은 너무나 확고하여 의심은 죄이고 검증은 불경한 것이었다.

TK의 딸은 달아나기로 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그 지역에서 제법 똘똘한 여자아이들만 모아놓은 곳이었다. 하지만 대입을 준비하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좌절 혹은 순응이었다. 둘 중 무엇을 골라도 결과는 같았다. 일명 스카이를 갈 것이 아니면 교대나 사범대를 가서 선생이 되는 것, 혹은 국립대 중 성적이 맞는 과에 가서 공무원 시험을 보는 것이 여자 팔자에는 제일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버지가 바라는 거라면-나 역시 그것을 원할지라도-나는 절대로 들어줄 마음이 없었다. 가족에겐 인색해도 모임에서는 골든벨을 울리던 아버지의 허세가 내게 도움이 되는 순간도 있었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필요했던 아버지와 그에게서 최대한 멀리 도망가고 싶었던 딸, 서로 다른 목적을 가졌지만 우리는 쉽게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스카이는 아니지만 어째튼 나는 우리 집안 최초로 서울 유학길에 오른 딸이 되었다. 이것은 197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1982년생인 내가 겪은 일이다.



어찌 보면 나는 아버지 덕에 수구 보수의 집결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작정이나 한 듯이 아버지가 싫어할 만한 짓은 골라서 했다. 대충 점수에 맞춰 고른 학교와 전공에서는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술을 진탕 마시는 날이 잦았고, 수업을 빠지는 날은 더 잦았다. 자퇴를 하기 전 유일하게 출석을 채우고 A학점을 받은 수업은 전공과 아무 상관없는 ‘여성 인권’에 관한 것이었다. 허락도 없이 몰래 자퇴를 하고 수능을 다시 보았다. 결국은 아버지가 원했던-실은 나의 어릴 적부터 꿈이기도 한-교사가 되었지만 발령 첫해에 전교조에 가입했다. 선거 때면 파랑과 노랑의 이야기에 공감을 했다. 더 높은 연봉보다는 가족과의 시간을 선택하고 연극과 기타 연주를 사랑하는, 아버지라면 딱 시시해할 만하지만 나와는 생각이 비슷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아버지가 싫어하는 것은 대부분 나의 선택을 받았고 내 삶의 한 조각이 되어 쌓여갔다. 그렇다면 나의 삶을 만든 것은 나인가, 아버지인가? 내 삶에서 선택은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나, 아버지를 반대하기 위한 반대였던가? 소설 데미안에서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가 만든 세계를 정말 깨뜨리고 진정 나로 태어난 것인가? 아버지는 내게 지긋지긋한 물음표를 던져주었다. 내 삶의 방향에 깊이 관여하며 여전히 당신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들었다. 이것은 미움인가, 오히려 지독한 사랑인가.

나는 채널A나 YTN 뉴스를 온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부끄럽다. 선거 때만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빨간 넥타이의 정치인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찍어주는 아버지를 보며, 가족을 그 반만이라도 응원해주었다면 우리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 본 아버지의 독서가 박근혜 회고록이라니, 남의 집 딸 가여워하는 동안 당신 딸이 멀어지는 것은 끝끝내 모른 척하는 그 모순을 부정하고 싶다. 아버지는 자신을 증명하지 못함으로써 딸을 당신 삶의 반대쪽 끝으로 몰아냈다. 당신이 만든 견고한 불합리의 세계를 깨고 나가도록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결심하게 만들었다.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마침내 삶의 방향을 찾았다. 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14일 공연을 가는 대신, 13일 밤 금요집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8살짜리 딸이 LED 촛불을 들고 능숙하게 구호를 따라 외쳤다. 까치발을 들고 머리 위로 높이 피켓을 들어 올리는 딸을 보며 생각한다. 너와 내가 함께하는 이 순간, 이 장소가 옳았다는 것을 함께 하는 삶 속에서 행동으로 보여주리라. 내게도 분명 오류, 아집, 모순, 허세, 비겁과 불합리가 있다. 하지만 내 딸이 반대를 위한 반대의 삶을 선택하지 않도록 나는 그것을 부끄러워하리라. 언젠가 딸이 나와 남편이 만든 세계를 깨고 나가려거든 기꺼이 박수를 보내리라. 나의 작은 세계를 의심하고 반박하고 깨뜨려 눈부신 하늘로 날아가도록 응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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