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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 Jul 19. 2024

기르는 일

아이의 말. 01

  “창피한 거랑 부끄러운 거랑 뭐가 달라?”

  올해 학교에 입학한 딸이 물었다. 아이의 반에서는 매주 월요일 감정 단어를 하나씩 배우고, 언제 그런 감정을 겪었는지 떠올려 감정 사전을 만든다. 반가워, 쓸쓸해, 행복해, 따분해, 유쾌해, 불쾌해, 그리워, 철렁해, 뿌듯해……. 그동안 배운 단어가 제법 되는데, 이 중에서 어른인 나조차도 그 뜻을 애매하게 알고 있는 것이 꽤 되었다. 분명 평소 자주 쓰던 말인데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럴 때 쉽게 설명하는 내 꼼수는 예를 드는 거다.

 

  “래래(딸의 애칭)가 길에서 엄마 친구를 만나면 쑥스러워서 뒤로 숨거나 목소리가 아주 작아지잖아. 그건 부끄러워서야. 창피한 건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드는 마음이거든.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방귀가 뿡 나와서 냄새가 날 때는 창피하겠지.”


  말을 하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하필,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근처에서 담배 피우는 상습범 아저씨가 있다. 마주칠 때면 들으라고 크게 했던 혼잣말, “애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나.”는 “애들 보기 창피하지도 않나.”로 바꿔 써야 하나? 고심해서 설명해 놓고도 영 찜찜함이 남는다. 사전에서는 ‘창피하다’와 ‘부끄럽다’를 이렇게 설명한다.


창피하다: 체면이 깎이는 일이나 아니꼬운 일을 당하여 부끄럽다.

부끄럽다: 일을 잘 못 하거나 양심에 거리끼어 볼 낯이 없거나 매우 떳떳하지 못하다.

         스스러움을 느끼어 매우 수줍다.     


  영 잘못 알고 있던 것은 아니나, 확실히 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새롭게 알게 된 거라면 내가 창피하다는 말에 조금 더 부정적인 뜻을 담아 써왔다는 정도다. 이후로도 ‘따분해’와 ‘심심해’, ‘재미있어’와 ‘유쾌해’가 뭐가 다른지를 설명해야 했다. 생각해 보면 비슷한 뜻을 가졌지만 미묘한 차이로 쓰임을 달리하는 말이 의외로 많다. 이를테면 ‘기르다’와 ‘키우다’처럼.



    

  나는 학교를 18년째 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졸업하지 못했다. 가끔은 우리 반 모두가 졸업해도 나만 학교에 남는다. 초등학교 입학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주말, 방학만 빼고는 매일 만나는 사람으로, 어쩌면 부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어른으로, 그렇게 살아온 나는 18년 차 교사다. 내 인생을 통틀어보면 재수 생활 일 년과 육아휴직 이 년을 빼고는 꼬박 학교에서 살아온 셈이다. 사람이 태어나 성인이 될 만큼의 시간을 교사로 살아온 나는, 감히 내 일을 기르는 일이라고 말하겠다.

 

  강아지를 키우고, 근육을 키우고, 회사를 키우고, 음악 소리도 키운다. 손톱을 기르고, 인내심을 기르고, 콩나물을 기르고, 버릇을 기른다. 사전에 따르면 ‘키우다’와 ‘기르다’는 ‘창피해’와 ‘부끄러워’처럼 비슷한 듯 말맛이 달라, 상황에 따라 더 어울리는 말이 있다. 내게 ‘키우다’는 몸집을 불리어 덩치가 커지는 느낌이고, ‘기르다’는 긴 시간을 들여 길이를 늘이는 느낌이다. 그 시간 때문에 교사로서의 내 삶이 키우기보다는 기르는 일로 느껴지는 거다.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두툼한 점퍼를 입고 만나, 노랑과 분홍이 피고 지는 것을 함께 본다. 뜨거운 선풍기 바람과 땀 냄새를 나누다가, 먹는 양이 무섭게 늘어 점심 배식을 두 번 세 번 먹는 아이들이 늘면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여름방학이 끝나는 2학기 첫 등교일 아침은, 어느 때보다 내가 기르는 사람이구나 싶다. 교실로 새카만 조약돌이 동글동글 들어온다. 여름 햇살은 아이들을 노릇노릇 굽기만 한 것이 아니다. 채 한 달이 안 되는 시간, 엿가락을 늘여놓은 듯 아이들이 쑥 자라서 온다. 길쭉해진 아이들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곧 선생님 따라잡겠다" 하면, 씩 웃는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더욱 반짝인다. 그 웃음을 보면 이제 정말 2학기가 시작되는구나 한다. 짧았던 소매가 길어지고, 주황과 빨강이 번지고 떨어지는 것을 함께 본다. 새카만 조약돌이 다시 눈처럼 하얘지는 겨울이 오면, 의자 위에 올라가지 않고도 칠판 제일 위까지 지울 수 있을 만큼 자랄 테지. 다시 두툼한 점퍼를 입고, 우리는 이별과 새로운 만남을 반복하는 것이다.


  작년 마음이 무너지는 사건이 연이어 뉴스를 장식했다. 홀로 애쓰다 차라리 세상에서 사라지기로 마음먹고 마는 일을 겪은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동료의 이야기로 학교 현장은 한동안 무거운 슬픔에 짓눌렸다. 내 일을 천직이라 여기며,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살 수 있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믿고 살던 내 마음은 한낱 모래성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학생 보호자와 나 사이의 크고 작은 갈등과 오해들이 다시 스멀스멀 떠올랐다. 언젠간 학교를 떠날 날이 올 거고, 계획보다 더 빨리 떠나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다 무너진 마음으로 잠들고, 아침이면 다시 쌓아 올리는 일상이 한동안 반복되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나, 아직 이 일을 좋아하는구나.'

  내 마음이 좋다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마음이 하는 말을 따라갈 수밖에. 학교와 나는 질기고 긴 끈으로 연결되어 버린 것 같았다.


  기르는 사람인 나는 진심으로 내 일을 잘하고 싶다. 또박또박 읽고 반듯하게 쓰는 실력을,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는 습관을,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날 때까지 듣고 내 의견을 말하는 인내심을, 어렵지만 한 번 더 해보는 끈기를 길러주고 싶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보는 안목을, 잘못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할 줄 아는 강단을, 주변을 돕는 따뜻한 마음을 길러주고 싶다. 무엇하나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고서는 기르기 어려운 일이다. 일 년 동안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음, 그다음, 또 그다음의 선생님이 더 잘 길러주실 거라 믿고, 떠나가는 뒷모습에 응원을 보낸다. 교사는 그렇게 앞사람의 일 년에 나의 일 년을 더해가며 긴 시간 동안 함께 아이를 기른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도 기르는 일을 한다. 남편과 딸은 머리를 기른다. 처음엔 멋으로 시작했던 일이지만 이제는 기부를 목표로 한다. 소아암 아동을 위한 가발 제작에 쓰일 머리카락이라서 염색도 파마도 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 19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이때가 아니면 언제 하나며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남편은, 이제는 뒤에서 보면 키 큰 아줌마처럼 보일 만큼 머리를 길러 묶고 다닌다. 어깨에 닿을락 말락한 길이일 때는 “알까기~”를 외치던 개그맨 최양락 씨가 생각나서 남편 얼굴을 볼 때 한 번씩 웃음이 터지곤 했었다. 여자들도 견디기 어렵다는 어깨에 닿는 긴 단발 기간을 무사히 견뎌내고, 이제 기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이만큼 길러냈다. 아빠를 따라 딸도 기부를 위해 열심히 머리를 기르는 중이다. 과연 이 둘의 인내심은 어디까지일지, 머리를 기르며 인내심을 함께 기르는 남편과 딸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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