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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다 Jul 26. 2024

느닷없는 연태고량주와 오향장육

B와는 2년만 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느닷없는 존재였다.

5년 전 느닷없이 나타났고, 느닷없이 친해졌고, 느닷없이 사라졌다.


잘 지내시죠? 여름이 완연하네요. 우리 접선해요.


느닷없는 메시지가 온 건 3주 전이었다. 2년의 공백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없는 담백한 문자에 나는 되려 안도했다. 2년 만에 해후할 접선지는 을지로의 오래된 중국집이었다.

약속시간보다 10분 더 일찍 도착했다는 B의 메시지를 보고 서둘러 지하철역을 빠져나왔다.

을지로 3가 역 2번 출구로 나와 골목을 향할 때쯤 B에게 다시 메시지가 왔다.


여기 암거래할 것 같은 분위기니 놀라지 마세요.


코너를 돌자 황금색 한자가 박힌 붉은색 간판이 보인다. 건물 외벽조차 붉은 타일로 장식되어 있고 정문 양쪽에 나 있는 창은 내부가 어두워서인지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문을 열자 정면에 금붕어들이 헤엄치는 낡고 거대한 어항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이 몹시 가파르고 천장이 머리에 닿을 듯 아슬한 높이다.

2층이 1층의 홀보다는 넓지만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검붉은 직사각형 테이블, 칠이 벗겨진 허름한 나무의자, 체리목 기둥과 베이지색 벽지. 손님들은 대부분 중년의 남자들이다.

테이블에 홀로 앉아있는 여자는 한 명뿐이었기 때문에 손쉽게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B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세련된 커트머리에 볼드한 금색 귀걸이, 심플한 검은색 정장 원피스, 가늘고 긴 눈매. B는 내가 아는 이들 중 가장 도회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

B가 코팅된 한 장짜리 메뉴판을 건네며 말했다.

“뭘로 시킬까요? 여기는 군만두랑 오향장육이 유명해요.”

“그럼 오향장육이랑 맥주 한 병 시킬까요?”

“좋아요. 연태고량주도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아, 그럼 맥주 빼고 연태고량주 중자로 시켜요. 저 연태도 좋아해요.”

그녀는 독주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색 술병과 작은 술잔 두 개, 오향장육이 테이블 위에 세팅되었다. 얇게 썰린 돼지고기와 오이, 파채, 송화단, 짠슬이 흰색 접시에 보기 좋게 올려져 있다.

연태고량주의 뚜껑을 따고 잔에 술을 따르자 특유의 꽃향이 코밑을 맴돈다.

잔을 부딪히며 B가 말했다.

“애인이랑은 잘 지내고 있어요?“

지금은 만나는 사람이 없는데 누굴 이야기하는 걸까. 잠시 고민하다 한 템포 늦게 대답했다.

“2년 전 애인을 말하는 거예요? 누군지 기억도 안 나요.”

“2년이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B가 눈을 휘며 웃었다.

고기에 파채와 짠슬을 올려 입안에 넣은 후 오이를 하나 집어먹었다. 향신료 향이 나는 차가운 고기와 채소는 연태고량주와도, 무더운 날씨와도 잘 어울렸다.

가게 안에는 어떠한 노래도 나오지 않았고 중년남자들의 어수선한 목소리만이 가득했다. 이곳의 분위기에 B는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그렇기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500ml였던 연태고량주병은 어느새 비어있고 접시에는 고기 몇 점과 채 썬 양배추, 송화단만 남아있다.

마지막 잔을 부딪혔다. 느닷없을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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