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연작에세이
주택이 밀집해 있는 골목길은 여름이면 유난히 더웠다. 빠져나갈 곳이 없는 열기가 밤이 되면 고스란히 집으로 들어왔다. 창문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은 그 어떤 것도 말려버리겠다는 단호함 같은 것이 있었다.
찬물로 샤워를 하지 못하는 나였지만 이때만큼은 찬물 샤워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했다. 샤워를 하고 나니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했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잠시 귀차니즘이 발동해 망설였다. 그러나 술기운에 의지해서라도 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더 절실했다. 결국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밖으로 나왔다. 골목길을 벗어나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집안 열기가 올라갈 대로 올라간 방구석을 피해 밖으로 피신 나온 할머니들 몇몇이 부채질을 하며 앉아 있었다.
현대시장 안에 위치한 슈퍼마켓으로 갔다. 맥주캔 4개를 들고 계산대에 섰다. 내 앞에 선 아주머니는 소주 6병과 요구르트 2줄을, 아주머니 앞에 선 아저씨는 막걸리 3병과 두루마리 휴지, 대파 한 단을 계산했다. 문득 이 지독한 여름의 허기와 지루함을 나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해 여름의 더위를 더욱 부채질했던 것은 식당에서 한 아르바이트 때문이기도 했다. 주방 일이 어려운 때는 여름이다. 화구의 열기와 식기세척기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가 주방을 숨 막히게 만들었다. 실내에 틀어놓은 에어컨은 주방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동네에 있는 한 분식집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부가 운영하는 분식집에서 남자는 주로 배달과 서빙을 했고, 30여 종의 음식 만드는 일을 여자 혼자 해내고 있었다. 여자는 십 년 가까이 그 일을 혼자 해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깡다구가 있어 보였다. 5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는 푸석한 단발머리를 질끈 묶고, 재료 손질부터 음식 만드는 일 모두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주문이 한 차례 끝나고 나면 여자는 주방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피곤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같이 피자고 했다. 나는 씩 웃으며 여자 옆에 앉았다.
처음에는 서빙만 하기로 했으나 이삼일이 지나고부터는 주방 일도 도왔다. 간단한 재료 손질과 식기세척기에서 나오는 그릇들을 정리하는 일 정도였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여자는 음식 하는 일을 나에게 맡기고 자신의 일을 보러 외출하기도 했다. 분식집이었지만 저녁에는 술도 팔았다. 동네에 있는 분식집이다 보니 저녁에는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밥과 술을 먹었다.
어느 날이었다. 분식집에 들어서며 인사를 하다 말고 그야말로 뜨악했다. 테이블은 제자리를 벗어나 제멋대로 위치해 있었고, 의자는 엎어져 있거나 벽에 기대어 있었다. 간혹 성한 테이블 위에는 먹다 남은 안줏거리들과 빈 소주병과 맥주병이 정신없이 놓여 있었다. 벽에는 생선찌개의 시뻘건 국물이 말라비틀어진 채 전날의 술자리 잔해를 말해주고 있었다.
식당 상황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주방에 들어서니 여자가 맥없이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자는 나를 보며 한숨을 쉬면서 오늘은 장사를 안 할 거라고 했다. 대신 식당 청소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러겠다고 했다. 테이블 위에 있던 그릇들과 병을 주방으로 옮기고, 의자들을 세워놓고, 바닥을 청소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남자는 나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여자가 말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 술만 마시면 자기가 개가 된다고 말이다. 남편과 말다툼이 있었고, 자신이 분을 이기지 못해 집어던졌다고도 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자신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부부싸움에 내가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날 하루 일당을 계산해 받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 뒤로 6개월이 지났다. 어머니가 무릎 수술을 결정하면서 보호자가 필요했다. 여자는 수고했다며 그 주 일했던 주급에 오만 원을 더해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회복하시면 다시 가게에 나오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주로 예상했던 병원 생활은 고령인 어머니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음으로 인해 한 달로 길어졌고, 식당에 다시 나갈 일은 없었다. 그리고 두 달 뒤 일을 찾아 홍성에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