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연작에세이
4시간 이상을 헤매고 다녔더니 허리와 다리가 아파왔다. 어차피 기차를 탈 시간이었다. 송현공원을 지나 동인천역으로 가려했던 계획을 변경해 버스를 탔다. 송현공원은 송림동에 살면서 자주 산책을 다녔던 곳이다. 송현공원을 지나는 대로변에는 낮은 담장의 집들이 있고 집과 집 사이 촘촘하게 골목길이 있다.
어느 날이었다. 공원에 가기 위해 송림동 집을 나와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갔다. 앞서 나의 아저씨 드라마에서 이지안과 박동훈이 나란히 걷던 길이다. 커브를 돌아 꼭대기에 서니 발아래 동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촘촘한 골목길을 따라 빨갛고, 파란 지붕이 보인다. 지붕 위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가 흠칫 놀라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고양이와의 눈싸움이 끝난 뒤 집을 따라 걸었다. 한 아주머니가 집 앞 평상에 앉아 있었다. 슬리퍼 한 짝을 벗고 다리 한쪽을 평상에 올려 구부린 채 발톱을 깎고 있었다. 오후 2시, 아주머니 등 뒤로는 햇살이 쏟아졌고, 간지러운 바람이 아주머니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선명하게 기억되는 그 시간과 장소에서 나는 뜬금없이 시골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좁은 방구석에서 휴지나 신문지를 깔고 손톱과 발톱을 깎다 보면 내 의도와는 다르게 튀어버린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부러진 손톱은 찾을 길이 없다. 나중에 어딘가에서 나오겠지, 하며 넘어가려 해도 집구석 어딘가에 내 흔적이 묻혀 있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찜찜하다. 언젠가는 이사할 집이니 더욱 그렇다. 방바닥을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손톱과 발톱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는 곳, 재개발의 광풍을 맞지 않을 만한 안전한 곳, 충만한 햇빛과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곳, 어쩌면 나에게 시골은 그런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늦가을이 되면 송림동 주택 주변에는 빨간 고추를 말리는 풍경이 곳곳에 펼쳐진다. 바구니에 얌전히 놓여 있거나, 세탁소 옷걸이에 소박하게 걸려 있기도 하며, 마치 무말랭이 말리듯 끈으로 줄줄이 매달려 있기도 하고, 지붕 끝 슬레이트 처마에 가지런히 놓여 있으며, 나무 지지대를 세워 그늘막을 쳐서 말리기도 한다. 말리는 모양새나 고추의 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쨍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말라가는 고추의 모습은 비슷하다. 그리고 그 고추를 말리기 위해 행여나 비가 올까 노심초사하는 어르신들의 마음 또한 한결같다. 숭의동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기도 하다.
동인천역에 내리니 광장에는 현대시장 화재 피해 복구지원을 위한 순환 나눔 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구청 직원들이 가지고 나온 물건들을 값싸게 판매하고 있었고, 덩달아 주민들이나 상인들도 나와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보는 북적이는 풍경이었다. 행사장 중앙에서는 마침 우유미밴드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기차 시간이 조금 남았기도 하고, 다리도 아파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젊은 부부와 아이, 그리고 나를 제외하고 관객 대부분은 할머니와 아저씨였다.
남성 기타리스트와 여성 보컬로 구성된 우유미밴드의 청아한 목소리가 광장에 울렸다. 나와 젊은 부부를 제외하고 박수를 치는 이가 없었다. 사회자가 거의 반 억지로 박수를 권유했고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던 할머니가 힘없이 손바닥을 마주쳤다. 노래 도중 술에 얼큰하게 취해 있던 한 아저씨가 왜 트로트는 안 하냐며 나훈아 노래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여성 보컬은 애써 웃으며 준비된 노래를 다 마친 뒤 무반주로 나훈아 노래를 불렀다. 나는 환호 정도는 아니지만 최대한 성심성의를 다해 박수를 쳤다.
동인천역 입구에는 늘 그렇듯 아저씨들의 쉼터였다. 중간중간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 소주나 막걸리를 앞에 두고 앉아 하염없이 담배를 피우는 노숙자들이 있었다. 주말이라 수녀들이 노숙자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간혹 보였다. 그때 담벼락에 길게 이어진 줄이 보였다. 길게 늘어선 줄 앞에 주저앉아 있는 한 할머니에게 무슨 줄이냐고 물어보았다.
-밥 주잖아.
할머니는 만사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줄에도 서열이 존재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한 아저씨가 혹여 새치기라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단속을 하고 다녔다. 한 할아버지에게 이 사람은 아침 8시 반부터 나와 줄을 섰다며 뒤로 가라고 하기도 했고, 담벼락을 삥 돌아 서 있는 줄을 왔다 갔다 하며 감시했다.
잠시 후 흰색 봉고차가 정차하고 연두색 조끼를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나눠줄 도시락을 건네기 전 조끼를 입은 이들은 동그랗게 모여 10분 정도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비닐봉지에 도시락과 국, 음료수를 넣어 사람들에게 하나씩 건넸다. 한 할머니는 두 개를 받아 밀차에 쑤셔 넣었다. 나는 광장에 앉아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며 담배를 피웠다. 발바닥에 짓이겨진 담배꽁초를 보며 지금 나에게 남겨진 삶의 남루함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벗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기 위해 약속하거나 격식을 차리기 위해 좋은 옷을 골라 입는 일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지금, 나의 이 단순하고 조촐한 삶의 맛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거나 무언가에 애면글면하지 않고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사선으로 비켜 가는 풍경을 보며 달콤한 잠에 스르르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