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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May 04. 2023

민낯의 골목길

골목길 연작에세이

지난해부터 집 바로 옆으로 아파트 건설이 시작되었다. 재개발의 광풍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고자 했던 내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다. 아침부터 ‘비켜주세요, 작업 중입니다’를 반복적으로 읽어대는 인공지능 여성의 목소리가 창문으로 흘러 들어왔다. 덩달아 먼지도 뽀얗게 내려앉았다. 


집이 위치한 곳은 사실 골목길이라 말하기도 애매한 길이었다. 다소 번화하다고 할 수 있는 읍내를 100여 미터 벗어나면 집으로 들어가는 외딴 골목길이 있다. 처음 이 집을 보러 갔을 때 주소만으로 집을 찾기 어려웠다. 이런 곳에 집이 있어? 라는 의문이 드는 곳이었다. 우리 집을 포함해 총 5가구가 거주했다. 그중 한 가구는 아파트 건설이 시작되면서 시세보다 적은 보상금을 받고 이사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에스자로 굽어진 골목길은 계절마다 다른 색깔을 만들어냈다.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하얗게 내려앉은 눈밭은 거의 대부분 길고양이와 내가 첫 발자국을 내었고, 덩달아 그 눈을 치워야 하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가을이면 우리 집과 빈집이 된 지 오래인 옆집에 심어놓은 은행나무가 선사하는 노란 은행잎 이불을 밟고 다니며 고약한 은행 냄새를 함께 맡아야 한다. 여름이면 작렬하는 햇빛 아래 초록 잎들이 노곤 하게 늘어지면서 갖가지 벌레와 곤충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봄이 되면 어디에서라도 그러하듯 온갖 잡초들과 더불어 수선화, 튤립 등 다양한 색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리고 때때로 미칠 듯한 붉은 석양을 선사하기도 한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사정은 조금 달라졌다. 시초는 그 골목길에 포클레인이 다니기 시작하면서다.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골목길에 포클레인이 다니면서 여기저기 흙더미와 돌을 내뱉고 다녔다. 일주일 정도 포클레인이 다니더니 이번에는 토지 공사를 위한 덤프트럭이 대로변을 가득 메웠다. 두 달 정도 지나 아파트가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온갖 건설 소음이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아파트가 올라가자 아파트 진입도로 공사를 했다. 때는 여름이었다. 


집 앞으로는 작은 공터가 있었다. 가끔은 차를 그곳에 주차했다. 그러다 지난해 땅 주인이 나타나 밭으로 경작하면서 주차할 공간은 없어졌다. 그 작은 공터 옆으로 아파트 진입로가 생기는 것이다. 야트막한 구릉지를 모두 파내고 나니 민낯의 도로가 창문 너머 펼쳐졌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먼지는 바람을 타고 창틀에 그대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지난주부터 아파트 옹벽 공사를 했다. 시작하기 전 건설사 직원이 찾아왔다. 대문 옆 작은 화단 뒤로 생기는 아파트 옹벽 공사로 인해 최소한의 민원을 막아보기 위한 방문이었다. 당연히 화단은 흙더미에 밀릴 것이 뻔했다. 막상 공사가 시작되니 인부들의 웅성거림과 각종 장비들이 발생하는 소음과 먼지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세입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화단과 집에 피해만 가지 않게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집에 돌아가니 마당에 휀스가 쳐져 있었다. 그동안 공사로 인해 가려져 있던 흰색 휀스를 걷어내고 임시용 휀스를 쳤던 것인데 그 휀스가 마당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건설사의 말로는 휀스를 쳐야 하는데 화단 나무를 훼손할 수 있어 할 수 없이 마당에 쳤다고 한다. 애초 담당 직원이 왔을 때와는 다른 설명이었다. 나는 현장 소장에게 항변했다. 나무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휀스를 쳐야 하며, 옹벽이 올라가고 난 뒤 반드시 화단을 원상복구 시켜줘야 한다고 했다. 휀스를 치는 문제는 건설사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 문제인데 타인의 집 마당에 휀스를 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당장 철수를 요구했다. 건설사 직원은 먼지 때문이라 설명했지만 겨우 여성인 내 신장 정도밖에 안 되는 휀스를 친다고 먼지가 발생하지 않을 리 없다. 궁색한 변명이었다. 잠시 후 휀스는 거둬졌고, 흙에 심어 놓은 휀스는 비바람이 불면 흔들거렸다. 더불어 아침마다 옹벽 주변에서 인부들의 웅성거림으로 인해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단 한 시도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 일요일 이외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어정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건설사 담당 직원 말의 요지는 이랬다. 아파트로 진입하는 도로가 새로 생길 것이고 그 덕분에 시야도 확보될 것이라고 말이다. 덩달아 길 건너편에는 역세권개발이 함께 이뤄지니 살기에도 훨씬 편리할 것이라 설명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신도 이런 곳에 단독주택을 구해 살고 싶다는 말도 첨언했다. 나는 그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사람의 말 대로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좋은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가 그 도로를 이용할 일은 전혀 없다. 내가 원하는 시야는 일직선으로 뻗은 직선의 도로가 아니라 작고 은밀한 오솔길 같은 풍경이다. 계절에 따라 자신의 색과 모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골목길의 모습 말이다. 직선의 도로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길이다. 


애초 길은 자연이 인간에게 허락한 만큼 딱 그만큼만 허용된다. 당연히 직선의 길이 아닌 곡선의 구불구불한 미로 같은 길이었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빠르지 않다는 이유로 곡선의 길은 직선으로 변화되었다. 이제 더 이상 자연이 허용해 준 곡선의 길은 쓸모없어 묵었거나, 누추하거나, 옹색하거나, 부재한 것처럼 느껴졌다. 비록 세입자이지만 8년을 거주했던 그 집의 일조권과 조망권을 상실했다는 허망함이 몰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조만간 이 집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신경질적으로 현관을 닫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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