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니지만 by 보리
요즘 SNS에서 1일 1 글, 1일 1 그림 등 하루에 하나씩 무엇인가를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에 그림 한 장 그리고, 글을 한 페이지씩만 써도 일 년이면 365장, 365매가 된다. 수학적 계산이 그렇다는 얘기다. 실제로는 과연 그렇게 될지는 자신만이 안다. 약속이 생겨서, 시간을 못 내어, 급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오늘은 왠지 하기 싫어서 등등의 이유가 365장과 365매를 만들어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다. 이런저런 핑계 아닌 이유를 요리조리 잘도 만들어댄다. 그래도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소주 한 병.
요즘 방송하고 있는 <나의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에는 구씨라는 인물이 나온다. 매일 소주 두 병을 사러 편의점에 간다. 편의점 주인은 또다시 오지 말고 아예 4병을 사 가지고 가라고 해도 꿋꿋하게 두 병을 산다. 멋지다. 집 앞 평상에 앉아 먼 산을 보며 깡소주를 마신다. 백 만년 만에 집을 치우고 나서도 소주를 마신다. 여주인공 염미정이 왜 맨날 술 마셔요, 라는 질문에 안 하면 뭐 해?, 라고 말한다. 너무나 허전한 얼굴로 말이다. 여기서 근사하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왠지 먹먹함이 차오른다. 술이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는 있어도 삶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지론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매일 소주를 마시는 것은 아니다. 대학교 입학식을 마치자마자 보란 듯이 술에 입문했다. 누구한테 보란 듯이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 선배들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념이나 정치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 같고, 시시껄렁한 수다를 늘어놓기도 했던 것 같다. 지하철 막차를 타고 잠이 드는 바람에 집에 가지 못할 뻔하기도 했다. 그 찬란하고 열정적인 이십 대에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하려고 했던 것이기에 그리도 많은 술과의 동행이 필요했던 것일까. 어쩌면 취기에 등 업은 인생의 몸부림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십 대가 지나고 나서도 소주는 내 삶의 동반자였다. 처음 술에 입문했을 때는 막걸리, 동동주, 위스키, 칵테일, 맥주 등 가리지 않고 주어진 대로 마셨지만 지금은 무조건 소주다. 막걸리나 동동주는 다음 날 머리가 아프고, 위스키는 너무 독하고, 칵테일은 이 맛도 저 맛도 안 나니 저절로 영양가라고는 일 도 없는 소주를 택하게 됐다. 그렇다고 엄청 주당은 아니다. 어느 정도 마시면 접을 줄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내 몸 하나 주체하지 못할 만큼 마시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인천에 살 때였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철길 아래에 포장마차가 있었다. 주황색 갑바를 밀치고 들어가면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준다. 혼자 가는 날에는 간단하게 어묵과 소주 한 병, 지인과 가는 날에는 오도독뼈에 소주 두 병이다. 옆 자리에는 중년의 남자가 혼자 술을 기울이고 있다. 나도 혼자였다면 그 자리가 꽤나 어색했을 것이다. 지인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시간이 얼추 자정이 가까워지자 백열등 아래에서 아주머니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 막잔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머니의 귀가를 도왔다. 지금은 포장마차를 흔하게 볼 수 없어서 이래저래 아쉬운 기억이다.
코로나로 인해 밖에서 마시는 술자리가 줄어든 요즘, 집에서 혼술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혼자 술을 마시면 주로 메모를 한다. 구씨처럼 멍하니 이 산 저 산을 바라보게 되지는 않는다. 바라볼 산도 없다. 다만 마당에 우람하게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의 연초록 흔들림을 느낄 수는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소주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풍경은 처마 밑에 앉아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를 안주 삼아 마시는 소주 한 병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