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별 것 아니지만 by 보리

by 김보리

서울에서 인천으로 가는 1호선 지하철에서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우르르 탔다. 그중 한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은 엄마 옆에, 딸은 아빠 옆에 앉았다. 어디를 놀러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중인 것 같았다. 아빠와 딸은 눈을 맞추며 웃었고, 엄마와 아들은 어깨를 잡고 미소 지었다. 지하철이 출발하고 10여 분 정도 지났을까. 딸은 아빠의 어깨와 팔 중간 어디쯤에 기대어 졸기 시작했다. 그런 딸을 바라보며 아빠는 고개를 받혀주었다. 아들도 잠시 후 꾸벅꾸벅 졸았고 엄마는 한 팔로 아들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그 사이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마주 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에 흠칫 놀랐다. 저 소녀의 나이 때 즈음 나는 어떤 마음으로 부모님과 소풍을 다녔을까, 그리고 어머니의 병원에서 밤을 새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내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마음의 고뇌가 넘쳤던 까닭이다.


어머니의 무릎 수술을 전후로 우리 가족은 이런저런 잔치레를 겪었다. 형부는 10년 동안 해오던 식당을 정리했고, 그곳에서 일하던 남동생도 실업자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나 역시 함께 작업해오던 단체와 결별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내가 어머니의 병간호를 맡았다. 어머니 혼자 수술을 결정했고 우리는 통보만 받았다. 뭐 대단한 일을 한다고 어머니 혼자 병원에 가게 했을까 싶었다. 아침 일찍 수술이 잡혀 오후 5시에 병실에 도착해 입원 수속을 했다. 7인실 병실을 사용했다. 입구를 제외하고 복도를 중간으로 침대 3개와 4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간이침대까지 펼치면 보호자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마치 도데끼시장 같았다. 간병인과 보호자, 환자, 그리고 주말이면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병실은 늘 수선스러웠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수술 후 진통제 없이는 잠을 자지 못했다. 수술 후 투여되는 항생제에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였다.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곤두서 옆 침대에서 말소리가 커지면 칸막이로 사용되는 커튼을 신경질적으로 쳤다. 그리곤 몸을 모로 누워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간이침대에 어정쩡하게 앉아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이 주일 정도로 예상했던 병원 생활은 한 달이 되어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워낙 고령이기도 했고 이 주가 지나서야 겨우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 주차가 되어갈 무렵부터 저녁에는 집으로 퇴근하고 아침 식사가 나오기 전에 병원에 도착하는 생활을 했다. 한 달 만에 돌아온 어머니는 집에서의 지나버린 비움에 다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추위를 타지 않았던 어머니는 집이 춥다며 보일러를 빵빵하게 돌렸다. 도시가스 값을 걱정해 저녁에만 잠시 돌렸던 어머니였다. 밥도 안 넘어간다면 밥공기 언저리를 배회하다가 이내 수저를 놓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어머니는 본래 자신의 생활 라이프에 적응해갔다. 그리고 두 달 뒤 나는 직장을 찾아 시골로 내려갔다.


지금도 가끔 서울에 가면 지하철을 이용한다. 그 사이 노선이 더 늘어나 지하철은 더 복잡해졌다. 세상 어디에도 하늘과 땅이 있지만 이토록 지하로, 지하로 자꾸만 내려가다가 어디까지 내려갈지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환기가 되지 않는 통로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 보면 어딘가에 무지근한 내 몸뚱이를 던져 놓은 심정이었다. 제발 저 캄캄한 어둠의 터널을 뚫고 지상의 밝은 빛이 도달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주렴, 이라고 간절하게 빌기도 한다.


일요일 오전, 지하철 4호선은 한산했다. 앞자리에 여성 세 명이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맨 오른쪽에 앉아 있던 여성이 마스크를 반쯤 내리고 손가락을 콧구멍에 넣고 후비기 시작했다. 거의 5분 이상을 열심히 후벼대는 동안 옆에 앉은 동료 여자들은 자신만의 이야기에 몰두하느라 그녀가 코를 후비는지 귓구멍을 파내는지 알지 못했다. 보고 있는 내가 다 시원할 정도로 코를 후비던 여자는 드디어 만족한 일 처리를 끝내고 난 뒤의 표정을 지으며 마스크를 올렸다. 손가락은 바지 어디쯤을 헤매다 무릎 위에 안착했다.


지하철에는 불편한 쩍벌남, 달갑지 않은 음식 냄새, 내 집처럼 맘 놓고 크게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 등 미간을 찡그리게 하는 모습들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 재미있는 이야기를 훔쳐 듣는 즐거움, 출퇴근에 지쳐 피곤한 안색의 사람들, 나만 제외하고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 낯선 타인들의 모습을 읽고 상상하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오늘은 어떤 사람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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