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맛을 담은 한 그릇

사라진 기억, 오래된 현재-국밥과 국수

by 김보리


한 그릇 음식하면 흔히 자장면, 우동, 덮밥, 설렁탕, 국밥, 국수 등을 떠올리게 된다. 간단하다고 생각하지만 한 그릇의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다. 단지 같이 내어놓는 반찬 수가 적을 뿐이다. 수없이 많은 음식 가운데 겨울이면 뜨끈한 국물이 간절해진다. 육수에 밥 한 술을 말아 김치와 먹으면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기에 충분하다.


영하 20도를 기록한 어느 겨울이었다. 3층 건물까지 내려앉은 회색빛 하늘과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이가 턱턱 부딪혔다. 빈속으로 돌아다니니 더 허기가 졌다. 예산시장 주변에는 국밥과 국수집들이 모여 있다. 1926년에 개설된 예산시장은 장날이면 장사꾼들과 손님들로 북적이며 그들의 허기를 덜어줄 국밥이 발달했다. 주로 장날이면 천막을 치고 국밥을 팔았다. 예산장터국밥 윤순희 대표는 모친 신승례 씨의 뒤를 이어 지금도 국밥을 판매하고 있다. 신승례 씨는 독립운동가 신현상의 여동생이다. 이후 2017년 예산시장 다목적공간 조성사업이 진행되면서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점심시간 보다 조금 이른 시간 국밥집으로 향했다. 장날이고 휴일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많았다. 여기저기 주문을 받느라 종업원들은 정신이 없어 보였다. 국밥을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가게 내부는 깔끔했다. 조리공간이 식탁에 앉아 있으니 훤하게 보였다. 가스불 위에 뚝배기가 끊임없이 올라가고, 주방장의 걷어붙인 소매 밑으로 기름진 땀이 흐르고 있었다. 낮이었지만 일부는 수육에 막걸리를 곁들이며 밥보다 대화에 열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10여 분이 지나 뚝배기에 담긴 국밥과 청양고추, 깍두기와 김치가 나왔다. 숙주와 부추가 듬뿍 들어간 국밥은 소고기로 우려낸 맑은 국물을 베이스로 했다. 일반적으로 돼지국밥에서 느낄 수 없는 깔끔함이었다. 국물을 한 수저 떠먹으니 눈으로 보던 것처럼 고기 잡내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청양고추를 한 수저 넣으니 칼칼함이 더해져 한기와 허기를 덜어주기에 가장 적당한 음식이 되었다.


나는 국에 밥을 말아먹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직 젊어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국밥을 먹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국에 밥을 말아먹을 수밖에 없다. 이때 밥은 절대 질어서는 안 된다. 밥알에 고기 육수가 알알이 흠뻑 스며들어야 국밥의 참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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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국수는 좀 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한 그릇 음식이다. 예로부터 장수를 의미하는 국수는 혼례 등의 잔치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보급되면서 밀가루를 가지고 오면 방앗간에서 국수를 뽑아주었다. 이를 ‘삯국수’라 한다. 예산에서도 삯국수로 시작하다 본격적으로 국수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곳이 많다.


버드나무 밑에서 방앗간을 하며 국수 가게를 했다고 해서 지어진 상호인 버들국수는 김대원 씨가 시작해 그의 딸 김영선 씨가 이어받았다가 조카 김명국 씨를 거쳐 현재는 아들 김명국 씨가 운영하고 있다. 김성산 씨가 운영했던 쌍송국수는 일본식 2층 목조주택에서 국수를 생산했다. 김성산 씨 작고 후 아들 김민균 씨가 가업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예산전통국수, 역전시장국수 등이 예산 국수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국수를 만드는 일은 까다롭다. 반죽도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며 날씨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습도를 잘 맞춰야 하는 것이다. 습도가 높은 날에는 염도를 높여줘야 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그야말로 국수 가락이 미친년 머리처럼 정신없이 날아다니기도 한다. 밀가루, 전분, 물, 소금만으로 이뤄지는 국수지만 그 양을 잘 맞춰야만 쫄깃한 국수를 생산할 수 있다. 예전에는 자연건조를 위해 ‘시누대’라 부르는 대나무에 국수를 널어 말리는 광경이 흔했다. 공해와 미세먼지가 심해지면서 실내 건조를 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하얀 빛깔을 뽐내며 바람에 하늘거리는 면발을 지금도 종종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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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의 생명은 쫄깃함이다. 물론 육수도 한몫해야 한다. 간단한 것 같아 보이지만 육수를 내기 위해 이런저런 재료들을 준비해 시간을 들여 푹 끓여내고, 고명으로 얹을 재료들을 지지고 부쳐내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한 그릇으로써의 국수와 국밥을 찾게 되는 것은 바로 기억의 맛이기 때문이다. 배고팠던 시절,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주었던 국밥 한 그릇이 품고 있던 온기의 기억, 아버지의 만수무강과 동생의 혼인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맑은 멸치국물에 후루룩 끓여 내었던 잔치국수 한 그릇의 감사의 기억이다. 뜨거운 한 입을 넣는 순간, 뭉클해지는 기억의 맛을 떠올리게 하는 한 그릇 음식, 국밥과 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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