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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콘텐츠연구소 Feb 07. 2022

<삼국지연의> 속 리더에게 배우다.4

4. 리더들의 특징과 차이점

4. 리더들의 특징과 차이점


3) 실패한 리더: 원술


그(원술)는 사치를 즐기고 음란, 방탕하여 그 끝이 좋지 못했으니

이것은 모두 스스로 불러들인 화이다.

                                                                                           - 진수(정사 <삼국지>의 저자


 능력에 비해 지나친 욕심을 지녔던 그는 <삼국지연의> 초반에는 가장 강력한 군주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으니 모두를 적으로 만드는 능력이었다.

사세삼공(4세대에 걸쳐 3번의 정승을 배출한)의 명문가였던그는 이복동생인 원소를 오랫동안 시기하고 질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우선 그가 반통탁 연합에서 보급품을 담당할 때는 손견이 공을 세우는 것을 시기한 나머지, 손견이 동탁을 공격할 때 보급을 중단하여 결국 손견과 조조가 연합을 탈퇴하게 만들었다. 원소가 새황제를 추대하려하자 원소를 비난하여 반동탁 연합이 원소파와 원술파로 나뉘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손책에게 받은 옥새를 지키기 위해 수 많은 적을 만들었고, 이후에는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가 결국 조조, 손책, 여포, 유비 연합군에게 패배 후 죽임을 당한다. 


4) 실패한 리더: 원소


저 아이가 끝내 큰일을 저지를 것이다.

                                                                                               - 십상시 중 조충과 장양


흔히 말하는 2% 부족한 사람이 바로 원소라고 할 수 있다. 첩의 자식이라는 출신의 한계를 극복해내었지만 제대로 된 기회는 잡을 줄 몰랐던 인물이 바로 원소이다.

원술의 시기와 질투를 받으면서도 하북을 평정한 그는 공손찬을 물리치고 가장 많은 세를 키웠는데, 당시 그를 따르는 세력은 조조의 10배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때문에 그는 자만심에 빠지게 되었고, 조조가 유비를 치기 위해 허도를 비웠을 때 모사 전풍이 허도를 치자고 주장했지만, 막내 아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그후에는 저수와 전풍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조조를 뒤늦게 공격(전풍 처형)하여 관도대전에서 패배하였다. 이후에도 후계자 선정 실패로 자신의 세력이 내분에 휩싸여 지리멸렬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영웅으로 시작된 그의 행보는 못난 아버지로 끝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5) 실패한 리더: 공손찬


수많은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백마장군

어떤 사람들에게는 큰 성공이 독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공손찬이 그와 같은 인물이었다.

노식 선생의 문하에서 유비와 동문수학 했던 공손찬은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말단 관리에서 태수의 사위가 된 그는 북방을 대표하는 장군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후 원술과 손잡고 원소를 견제하였는데, 이때 자금 마련을 위해 주변 민족들을 약탈하는 만행을 벌인다. 그야말로 흙수저 출신이었던 공손찬이 올챙이적 생각을 못하고 폭군으로 변화한 것이다.

자수성가한 몇몇의 인물들이 그러하듯 그는 독선과 아집이 자라났고, 지나친 독선으로 인재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밑에 있던 유비는 자신의 세력을 키워 떠났고, 부하 장수이던 조자룡 역시 그를 떠나 유비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결국, 그는 자신이 약탈했던 주변 민족들과 손잡은 원소의 공격에 멸망하는 인과응보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5. 성공한 리더의 특징

1) 손권


군세를 이끌고 싸우는 것이라면 내 쪽이 더 낫다.

그러나 현자를 발탁하여 나라를 지켜내는 일은 네가 더 훌륭하다.

안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장소에게 묻고

밖으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주유에게 물어 대처하라.

                                                                                                      - 손책이 손권에게 한 말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을 자신의 삶으로 반박한 인물이 바로 손권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도 죽고, 어머니도 죽고, 형마저 죽고나서 정권을 잡은 손권은 그야말로 재벌2세가 어떻게 수성을 해야 하는지 보여 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에서 이어진 수하들의 보필을 잘 받아들이고 이용한 그는 정보, 장소, 주유, 노숙, 제갈근 등을 중용하며 그들을 믿고 일을 맡겼다. 특히, 노숙의 삼국정족지세를 수용하여 오나라의 국력과 한계를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220년 조비가 위황제에 등극하고, 221년 유비가 촉황제로 등극하자 자신도 229년 황제의 자리에 앉는다. 이후 유선과 동맹을 맺고 위와 전쟁을 벌였던 그는 노숙의 죽음(217년)이후 변하는데, 유비와의 동맹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독재자로 변신한다. 그 결과 위나라에 무너지게 되지만 그전까지 그는 뛰어난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손권의 리더십이 가진 특징은 무엇이었을까? 

(1) 불신물용(믿지 못하겠거든 쓰지를 말아라)

: 제갈량의 형인 제갈근의 배반을 걱정하던 주변 사람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와 제갈근은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했다. 그가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은, 내가 제갈근을 배반하지 않을 것과 같다.”

또한, 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다.

"부하의 단점에는 눈을 감고, 오로지 그 장점만을 보며 그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준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부하를 믿고, 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었다.


2) 섬기는 리더

: 친형처럼 따르던 주유가 죽자 직접 소복을 입고 통곡하였으며, 아들은 사위로 삼고, 딸은 며느리로 삼았다. 또한, 여몽이 병에 걸리자 수많은 의원을 불러 들였고, 혹시나하는 마음에 벽에 구멍을 뚫어 여몽을 수시로 살펴 보았다. 그러다 결국 여몽이 죽자 300가구를 붙여 묘를 살피게 하였다.

손권은 이처럼 자신의 수하들을 가족처럼 아끼고 보살폈기에 수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3) 현실을 직시

: 조비가 위의 황제에 오르자 스스로 신하를 자청하며 아들을 인질로 보내고, 각종 진상품을 바쳤을 정도로 오나라의 능력과 한계를 명확하게 파악하였다. 그러다가 유비가 죽자 제갈량과 협상하여 촉오연합을 결성하여 위나라와 대립하기도 했지만, 큰 전쟁을 최대한 피하며 적당한 선을 지키려 노력했다. 나이가 들면서 모험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 역시 그의 현실을 직시하는 성향 때문이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손권은 현실을 수용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공성보다는 수성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애초에 위나라의 국력이 너무 강하였던 당시 상황, 그리고 그가 정권을 잡았을 때 이미 조조는 40대, 유비는 50대, 손권은 10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한 것이다. 더불어 조조나 유비처럼 스스로 세력을 키운 것이 아닌 호족세력의 연합이라는 오나라의 특성 또한 그의 성향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조조나 유비와 같은 인물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당당히 삼국의 한 기둥으로 오나라를 지켜낸 것이 그의 능력을 대변해 준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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