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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콘텐츠연구소 Mar 04. 2022

우리가 몰랐던 삼국시대 이야기. 2

2. 끝없는 분열의 시대

2. 끝없는 분열의 시대


1) 우리는 단일민족일까?

요즘은 좀 사라진 표현이지만 얼마 전까지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단일민족’이란 하나의 순수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지거나 단일민족 속에 소수의 다른 민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수가 극히 적어 국가의 구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국가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우리는 단일민족일 수가 없습니다. 특히 고조선 이후 분열된 여러 나라와 민족들을 살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뒤 고조선이란 뿌리는 여러 갈래의 줄기로 나뉩니다.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해도 나라로 따지면 위만조선, 마한, 변한, 신라, 진한, 북부여 – 동부여, 졸본부여(고구려) – 십제(백제) 순으로 나라가 생겨났으며, 나라를 이루지 못한 말갈, 발해, 옥저, 동예, 낙랑, 몽골, 선비, 돌궐, 흉노 부족 역시 고조선에서 나뉜 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중국이 아닌 우리의 열국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2) 화합과 연맹

이렇게 분열된 나라와 민족들은 각각의 이해 관계에 따라 화합과 연맹을 통해 자신들의 세를 불려갔습니다.

통일을 이룩한 신라를 보자면 ‘6마을 연맹으로 시작하여 혁거세 계열의 이주민 + 진한 + 석탈해 계열의 이주민 + 김알지 계열의 이주민 + 가야계’가 합쳐져 만들어졌으며, 통일 이후에는 고구려계와 백제계의 유민까지 끌어들이며 당나라의 간섭을 벗어나기 위한 전쟁을 벌렸습니다.

고구려 ‘5부족 연맹으로 시작하여 + 옥저 + 동부여 + 낙랑’을 통합하였고,

백제의 경우에는 잠시 나뉘었던 ‘비류와 온조 세력이 합치면서 + 마한 + 중국 해안 지역 + 왜’까지 끌어들여 세력을 이룩했습니다. 


3) 심화되는 사대주의

그러나 이렇게 화합과 연맹을 통해 세를 불리던 삼국은 더 이상의 확장을 하지 못한 채 7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분열과 전쟁을 이어 나갑니다.

거기에다 중국에서 들여온 사고 체계(유교, 불교, 도교)를 시작으로 중국의 문화와 물건들을 선망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자기 비하와 사대주의로 심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 것은 별볼일 없는 것이고, 중국의 것이 가장 훌륭하다는 의식이 깊어지면서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경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삼국이 통일되고 고려와 조선으로 나라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의식으로 남게 되는데, 따라서 사람들의 삼국시대 이전의 우리 역사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되었고 역사의 정통성이 중국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계기가 됩니다. 이는 다시 우리 문화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보잘 것 없다는 편견을 갖게 만듭니다. 


4) 신라의 삼국통일이 가져온 한계

이러한 인식이 생겨나게 된 바탕에는 백제 – 고구려 – 신라의 순으로 이어진 전성기 문제도 있습니다. 해로를 점령하며 중국과 교역을 시작했던 백제가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았으며, 이후 육로를 통해 중국과 교류와 갈등을 반복했던 고구려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경우에는 육로는 고구려를 거쳐서, 해로는 백제를 거쳐서 중국의 문물을 들여와야만 했기에 한강 유역의 확보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신라의 진흥왕은 백제와 힘을 합하여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 유역을 빼앗는데 성공하는데, 자신들의 절실함 때문에 힘을 합쳤던 백제와의 약속을 깨고 그들을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독차지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신라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는데, 120여년 동안 유지하던 ‘나제 동맹’을 깬 것도 모자라 대가야와 힘을 합쳐 공격해 온 백제의 성왕을 죽여버린 것입니다.

결국, 백제는 자신들의 왕을 죽인 신라에 복수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크고 작은 전투를 일으키는데, 그 와중에 김춘수의 딸 고타소와 그의 남편이자 대야성의 도독인 김품석을 죽이는데 성공합니다.

김춘추는 백제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딸의 복수를 하기 위해 고민합니다. 하지만 신라의 힘은 아직 백제를 당해 내기 어려웠기에 먼저 고구려를 찾아가 동맹을 제의하게 됩니다. 그때, 고구려의 최고 권력자였던 연개소문은 진흥왕 때 빼앗아간 한강 상류의 땅을 돌려주면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김춘추가 신하의 몸으로 그런 것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하자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러나 겨우 고구려를 탈출한 김춘추는 이번에는 당나라에 가서 동맹을 요청했고,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연달아 이득을 보지 못했던 당나라는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나당동맹’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나당 연합군은 마침내 백제를 멸망(660년)시키고, 8년 후에는 고구려마저 멸망시키게 됩니다.

문제는 이처럼 고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오던 우리끼리의 세력 다툼에 이민족 세력을 끌어들였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당나라는 신라마저 정복하여 한반도 전체를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만들려 하였고, 이에 위기를 느낀 신라는 그제서야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까지 설득하여 생존을 위한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결국,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그 결과 한반도 북쪽의 땅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신라와 진흥왕의 욕심은 결국 우리 민족을, 부여를 흡수했던 고구려 전체의 면적보다 작은 땅덩이 안에 갇히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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