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했어야 할 이름들.6

6. 성기

6. 성기


1) 위만조선의 탄생


이번에는 고조선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 한다. 제 글을 구독하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고조선은 북방계 기마민족의 연합체였다. 그러나 연합의 결속이 느슨해지고 중국이 한나라로 통일되면서 고조선은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된다. 그래서 연나라의 위만이 자신의 부하 1천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에 망명했을 때, 고조선의 준왕은 그의 거짓말을 믿어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도 믿었는지 아니면 믿지는 못했어도 상황상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르지만 준왕은 위만과 그의 부하들에게 국경수비를 맡겼다. 하지만 위만은 이내 본색을 드러내 반란을 일으켰고 역사상 최초의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게 되었다.(b.c.194)


물론 일부학자들은 위만이 원래 고조선이 연나라에게 약 1천리 가량의 땅을 빼앗겼을 때 끌려갔던 고조선인의 후손으로 유추하기도 한다. 그랬기 때문에 준왕이 그를 믿고 부하들과 함께 국경수비를 전담할 수 있도록 해주었을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역사서에서도 확인하기가 어렵다.


어쨌든 그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는 몰라도 그는 거대한 제국이지만 오히려 거대해서 둔해진 한나라에 외신(外臣)이 되는 것에 동의했다. 다만 그것은 한나라의 이목을 돌리고 한나라에게서 실질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서였다. 결국, 그의 예상대로 고조선은 외신의 지위를 이용해 한나라의 물건을 싸게 들여와 주변 나라들에게 판매하는 중계무역을 통해 경제력을 키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진번과 임둔과 같은 주변의 소국들을 복속시키며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


그 결과 그의 손자인 우거왕 때는 한나라와 맞서 싸울 정도의 세력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이 전쟁의 실패로 고조선이 멸망하였으니 인생사는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는 듯하다.


어찌되었든 당시 위만조선은 한나라와의 중계무역을 독점하며 주변국을 압박하였고, 이것이 한나라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리고 한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내어 중계무역을 멈추라 했지만 우거왕은 이에 반발했다. 그러자 한나라 사신 섭하는 자신을 배웅하러 나온 비왕 장을 국경 근처인 패수에서 살해한다.(b.c.109) 그러자 한무제는 섭하를 칭찬하며 그를 요동군부도위로 삼아 우거왕을 자극하였다. 우거왕은 군사를 몰아 요동군을 치고 섭하를 잡아 죽인다. 이것은 한무제에게도 고조선을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이 되었다.


2) 한나라와 고조선의 전쟁


한나라의 무제는 군사를 몰아 고조선을 침략하였다.(B.C.109) 그리고 이때 이들과 맞서 분전한 인물이 바로 성기 장군이다. 당시 한 무제는 양복에게 5만의 군사를 주어 산둥반도를 지나 수로로 고조선을 공격하게 했고, 좌장군 순체에게는 요동지방을 건너 육로로 침입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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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 무제

순체의 육군이 패수(대릉하)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요하하구에서 양복의 수군과 합류하여 왕검성을 포위 공격하는 전략이었다. 성기는 이러한 적의 전략을 간파하고 패수에서 적의 공격을 분쇄시켰다.



좌장군의 졸정 다는 료동지방출신 군사들을 거느리고 먼저 공격하였으나 패하여 흩어지고 다는 도망쳐 돌아왔으므로 법에 따라 목을 베였다.

<한서>



좌장군 순체는 다시 병력을 모아 공격을 실시했지만 역시 성기 장군이 이끄는 패수 방어군에게 패하였다. 양복은 육군이 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조급해져서 홀로 7천여 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왕검성 공격에 나선다. 그러나 위만조선 군대의 거센 반격을 받고 겨우 목숨만 건져 산으로 도망하여 10여 일 동안 숨어 있어야 했다.


이처럼 자신이 보낸 군사들이 연패를 거듭하자 한무제는 위산을 사신으로 보내 강화를 진행한다. 결국, 한나라와 고조선은 잠깐의 휴전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기가 오른 고조선은 강화협상에서 강경한 자세를 취하게 되었고, 마침내 다시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한나라의 순체는 패수 중류 지역으로 돌아서 왕검성 서북쪽 포위에 성공했고, 양복 역시 패잔병들을 긁어 모아 왕검성 남쪽을 포위했다.


그러나 왕검성의 고조선군은 이들에 맞서 여러 달을 분전하여 왕검성을 지켜내었다. 이때 성기는 순체와 양복 모두 공명심에 들떠 불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간책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패잔병을 긁어 모아 만든 양복의 군대는 고조선과 강화 협상을 원했기에 양복에게는 사신을 보내어 강화의 조건을 협상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한편, 순체의 군대에는 강경하게 맞선 것이다. 결국 순체는 양복에게 함께 공격할 것을 요구했지만 강화를 기대하고 있던 양복은 이를 거절한다. 이후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벌어지게 되었고, 한무제 역시 두 장군이 왕검성을 포위하고도 서로 뜻이 달라 결말을 짓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터뜨린다. 성기는 이렇게 한나라 두 장수의 사이를 이간시켜 왕검성을 지켜낸 것이다.


한무제는 제남태수 공손수를 파견하였는데, 공손수는 순체의 말만 듣고는 양복을 구속하여 그의 군대를 순체에게 넘겨준다. 이로서 애초 한나라가 계획했던 수륙병진의 전략도 파탄이 난다. 다만 양복의 군대까지 거느리게 된 순체는 왕검성을 향해 총공격을 실시한다. 성기는 이들의 공격을 잘 막아내며 전쟁은 B.C.108년 여름까지 이어지게 된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고조선에서는 배신자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고위관료 중에서도 적진으로 넘어가 투항하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한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하던 니계상 참이 자객을 마부로 위장시켜 결국 우거왕을 살해하는데 성공한다. 이처럼 왕이 살해당하고 고위관료들이 적군에 투항하자 성은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성기는 동요하지 않고 왕검성의 수비군을 다독이며 왕검성을 끝까지 지켜낸다. 성기는 뛰어난 능력으로 왕검성의 수비군과 군민들을 묶어 마지막 항전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배신자들은 순체의 밀명을 받아 성안에 돌아와 투항을 권유하는 한편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 성기마저 암살한다. 결국, 고조선은 성기의 뛰어난 전술아래 1년 넘게 한나라의 공격을 막아냈으나 내부 배신자들에 의해 멸망한 것이다. 한무제 역시 자신들이 승리했지만 승리라고 여기지 않은 듯하다. 자신이 전쟁기간 동안 동원했던 4명의 장군 중 3명의 목을 베었으며 다른 1명 역시 관직을 빼앗아 버렸고, 수륙 양군 중 표창을 받은 사람도 한 명 없었다.


이처럼 당시 최고의 힘을 지니고 있던 한나라의 공격에 맞서 1년 넘게 싸웠으며 마지막에는 왕마저 살해 당한 상태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왕검성을 지켜냈던 성기 장군의 업적은 우리가 분명 기억할만 한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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