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감정이 나를 지배할 때
요즘 달리면서, 자꾸만 고개를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끝없는 의심, 이런 마음은 달리는 내내 나를 괴롭혔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람들 앞에서 풀코스를 완주해 보고 싶다는 말을 내뱉어서일까? 그렇게 꿈꾸던 풀코스의 설렘과 기대는 부담감으로 뒤바뀌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더더욱, 내가 너무 무모하고 경솔했나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풀코스만 생각하면 무섭고 두려워 숨 막히는 기분마저 들었다. 웃기게도 ‘아직’ 접수도 하지 않은 대회를 말이다. 당장, 3월 2일에 있을 하프 마라톤마저 취소하고 싶었다.
달리기하는 날과 거리도 확연히 줄었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달리는 시간마저 ‘내 욕심’처럼 느껴졌다. 달리는 동안 아이들은 TV 리모컨을 놓지 않는다. 유튜브와 만화를 보며 미디어의 노예가 된다. 아이들이 방치된다는 생각은 뛰러 나갈 수 없는 변명거리가 되었다.
그러니까 더 조급해졌다. 준비를 열심히 해도 불안한데 ‘이러다가 망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대회도 다가오는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아이들과 공원에 나가 큰아이, 작은아이가 나누어 함께 달려 달라고 부탁했다. 출발 전 의욕에 넘쳤던 아이들은 금방 지쳤고, 나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3km를 힘들게 채웠다. 아이들이 놀이터에 있을 때는 놀이터 주변을 크게 돌았다. 쌀쌀한 날씨에 아이들은 밖에 오래 있지 못했고 먼저 집으로 보낸 후 5km를 마저 채웠다. 내가 달릴 수 있는 시간이 30분 주어지면 그만큼만이라도 뛰려고 했다. 그러나 눈 내리는 날과 추위라는 환경은 또 하나의 핑계가 되었다.
명절에도 달렸다. 아이들을 맡기고 시가에서 16km를, 친정에서 10km를 뛰었다. 뭘 그렇게 유난스럽냐고 생각할까 봐 솔직히 눈치도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게 마음 편히 운동할 시간이 확보되는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아이들의 2달간의 방학, 겨울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이라고 핑계만 대고 투덜거릴 수만 없었다.
분명 한 달 전까지 장거리를 20km까지 달렸었다. 나의 마음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일기 시작하면서 점점 장거리가 힘들어졌다. 또 숨이 턱턱 차리만큼 뛰고 싶지 않다고 심술까지 부렸다. 역시나 페이스도 곤두박질쳤다. 세상 천천히 달렸고 달리는 거리도 점점 줄었다. 이게 달리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눈 내리던 날씨 덕에 오르막 훈련도 계속 빼먹었다.
나의 생활은 감정에 좌지우지되듯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아침이 되어도 도통 일어나기 싫었다. 늦잠을 잤음에도 하루 내내 피곤했고 몸도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었다. 커피를 연신 마셔댔지만, 희망이라는 끈이 풀려버린 사람처럼 도통 통하지 않은 듯했다. 며칠을 그렇게 지하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기분으로 보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감정들이 몰아쳤다.

솔직한 감정들을 종이에 쭉쭉 적어 내려갔다. 내 감정, 나의 욕심, 잘하고 싶은 부담감, 뜻대로 되지 않음에 대한 조급함, 무력감, 좌절, 허탈감, 불안, 걱정 등등. 이런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똑똑똑 내 마음에 문을 두드리며 열어보니, 어쩌면 깊은 바닷속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힘껏 점프해서 다시 수면위로 오르고 싶은,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마주했다.
“그럴 수 있으니까, 너무 다그치며 몰아세우지 마! 어쩌면 좀 천천히 가도 괜찮아! 완주를 조금 미루는 거야. 한번 풀코스 뛰고 끝낼 게 아니니까, 앞으로 계속해가려면, 조금 천천히 가도 되잖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는 멋지게 완주하겠지?”
휘몰아치는 감정에 대해 공감해 주고, 격려해 줬더니 셀프 위로가 되었다. 나를 향하던 비난의 화살들이 천천히 멈추고 나를 찌르던 고통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속상해서 들쑥날쑥했던 감정 기복이 점점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제야 과수면 상태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서서히 아침에 일어날 수 있었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고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파트 헬스장에도 등록했다. 미뤘던 근력운동도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상체 운동과 이름만 천국의 계단에서 지옥을 맛보고 있다. 야외 달리기는 비닐하우스가 쳐진 종합운동장의 트랙에서 다시 달렸다. 바람과 눈을 막아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훈련 장소였다. 무엇보다 육상 연습을 하는 어린 선수들의 훈련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엄청난 속도에 좀 기가 눌리기도 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뛰는 아이들의 모습에 반성이 되기도 한다. 속도를 늦추는 대신, 근력을 다지며 잠잠히 기다리기로 했다. 내구성을 다져서 달리기를 즐길만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는 중이니까.
내뱉으면 된다.
“자신 없다가 아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할 수 없다는 백가지 변명보다, 해내고야 말 한가지의 이유를 찾으면 된다고,
나는 꿈만 꾸는 사람이 아닌, 꿈을 이루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지금,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견뎌내는 중이라고.”
어쨌든 나는 더디지만, 다시 나아가고 있다.
#러닝일지
#달리기에진심
#비닐하우스트랙
#때론멈춰설떄도있지만
#더디지만다시나아가는중
#부정적인감정과마주할때
#지하100층밑바닥에서점프준비중
#하프대회어쩔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