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반 삐그덕, 주저앉아 땅 치고 싶었던 마라톤

2025년 3월 2일, 경기수원 국제하프마라톤

by 행복 한스푼

3월 2일, 이렇게 빨리 대회가 다가올 줄 몰랐다. 올해 5학년과 2학년이 된 큰아이와 작은 아이는 대회에 따라가지 않고 집에 있겠다고 했다. 하프 마라톤을 뛸 동안 차 안에서 핸드폰을 쥐고 있더라도 기다리는 게 힘들다는 거였다. 차라리 집에서 편하게 TV나 유튜브도 보고 친구랑도 놀겠다고 했다. 그런데 큰아이가 잘 때가 되자 펑펑 우는 것이었다. 자신이 동생을 잘 돌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면서, 미디어를 맘껏 볼 수 있는 건 좋지만 동생과 밥을 챙겨 먹어야 하고, 엄마 아빠 없이 반나절 이상을 보내려고 하니 무섭다는 거였다. 많이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아이의 어린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서우면 엄마와 아빠가 갈 때 같이 가자고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달래주었다. 완주에 대한 부담도 부담이었지만 아이들이 대회장에서 잘 기다릴 수 있을지 걱정되는 마음으로 겨우 잠들었다.


새벽 5시 10분쯤, 대회전 간단하게 먹을 것과 아침 도시락을 싸고 아이들을 깨웠다.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입으려다 침대로 도로 누웠다. 결국 “그냥 집에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집에 있을게.”라고 통보하며 마음 편히 이불을 뒤집어썼다.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당부와 완주하고 오겠다는 약속을 뒤로하고 차에 몸을 실었다.


쏟아지는 걱정과 긴장감으로 차 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우리가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간단한 말을 남편과 나누었다. “그래도 끝까지 한번 뛰어보자.”라는 말에는 떨림과 두려움이 있었다. 좀 더 열심을 내야 했다는 후회와 아이들 방학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착찹함이 교차했다. 완주 자체가 두려움으로 다가올 만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은 암묵적인 사실이니까.


수원 종합 운동장에 들어섰고, 여기저기 몸을 풀고 있는 사람들과 대회 진행자들로 가득찼다. 대회만이 주는 열기와 짜릿함이 존재했다. 열심히 준비했던 만큼 자신의 노력을 쏟아내길 원하는 바람, 대회를 즐겨보겠다며 활짝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 여유 넘쳐 보이지만 긴장감과 불안감이 뒤섞인 무언가. 복합적인 감정들을 느끼며 출발선에 섰다.


나의 페이스메이커로 함께 달리는 남편, 시작부터 몹시 들떠 있으며 대회를 즐기는 것처럼 신나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조금 전까지 함께 완주할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하던 사람 맞나?’ 싶었다. 파이팅을 외치며 환호하는 이 사람을 나는 몹시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걱정과 긴장감으로 사람들이 응원하는 소리가 무음처럼 들렸다. 무엇보다 분위기에 휩쓸려 내달리는 남편을 따라가면서 “천천히 가. 페이스 낮춰!”를 무한 반복하느라 초반부터 과호흡이 올 지경이었다.


모든 사람이 우리를 다 지나쳐가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한 명 따라잡는 것보다 백 명이 나를 따라잡는 게 많을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달리기를 못 하나? 싶었지만 불편한 진실에 눈을 꼭 감아야 했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할 뿐만 아니라, 완주하려면 나의 페이스로 달려야 하니까. 남이 잘 달리고 못 달리고는 중요하지 않다. 완주는 ‘오롯이’ 내가 해내야 하므로. 주변을 보며 백만 번씩 좌절하는 것보다, 남편의 발만 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걸 선택했다. ‘나의 페이스메이커를 믿고, 앞으로만 가면 돼! 힘들겠지만 완주한다고 했던 약속 꼭 지키자. 아이들에게 완주 메달 꼭 걸어주자고. 초반에 조금 시간을 벌어 놓으면 그래도 완주할 수 있을 거야. 조금 조금만 힘을 내자.’ 나를 달래고 다독이며 나아갔다.


벌써 반환점을 찍고 맞은편에 뛰어오는 사람들을 봤을 때는 감탄이 절로 났다.

‘저것이 사람이여? 야생마여?’

굉장한 발놀림과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자세는 그들의 지난 노력과 땀방울이 느껴졌다. 달리기가 빨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공을 들였던 시간’이 부러웠다. 그만큼의 피, 땀, 눈물 속에 녹아있는 고민과 채찍질, 그리고 성장통까지. 나는 그때만큼 모두의 달리기를 응원했다. 무사히 완주하게 해달라고.


10.5km의 반환점을 돌자, 이제야 나를 앞질러 간 사람들보다 나의 뒤에 오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나의 뒤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왜 이리 힘이 나던지. 못 달리는 것 같아 위축됐던 마음이 5~10쯤 회복되었다. 모두의 달리기를 응원한다던 착한 마음은 뒷사람들이 조금은 못 달려서 내 뒤를 좀 지켜줬으면 하는 악마 같은 마음으로 뒤바뀌었다. 물론 그 수는 몹시나 적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벌을 받는 것인가? 13km를 넘어가자 골반이 조금씩 아팠다. 내리막 오르막을 오가며 몇 명씩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살포시 걷고 싶었다. 자꾸 뒤를 보며 내가 잘 달리고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나의 페이스메이커만 없었다면 말이다. 살짝 멈추려고 하면 기가 막히게 남편이 돌아보았다. 뜨끔해서 달리고 달리니 이제 15km를 넘어갔다.


골반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18km가 되자 남편이 보는데도 걸었다. 아니 남편이 보니 제발 걸어가자고 말하고 속도를 줄였다. 힘드니까 이제 천천히 가자고 티를 팍팍 내고 싶었다. 남편은 옆으로 와서 나를 살짝 밀어도 주고, 손도 다정히(?) 잡으며 이끌어도 봤지만 나는 요지부동이었다. 전날 싸워서 삐친 사람처럼 “그러지 마라!”며 잡은 손을 뿌리쳤다. “그래도 걷지는 말자.”는 애잔하게 부르짖는 페이스메이커의 구슬픈 울림은 그래도 천천히라도 뛰자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진짜 숨이 차서 저세상 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진짜 울고 싶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이깟 완주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 요동치게 하는가? 싶었다. 마냥 주저앉아 왜 마라톤을 접수했을까? 땅을 치고 싶었다. 결국 18km, 완주하기 남은 딱 3km는 체감 30km처럼 멀고도 멀게만 느껴졌다. 고통의 도가니탕에서 허우적거리며 호흡과 팔의 리듬마져 깨지며 몹시 위태로웠다.

눈을 떠보니 나는 결승선에 있었다. 항상 해냈다고 웃으면서 들어오는 걸 상상했지만 역시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인상을 팍~ 구긴 채 들어와 버렸다. 시간은 빨리 갔지만 절레절레 고개가 흔들어졌다. 두 번째 하프마라톤, 2년 전보다 무려 22분이나 늦게 완주했다. 하지만 나는 만족했고 감사했다. 나의 목표는 완주였으니까. 그것 하나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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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는 조금씩 더 채워나가면 된다. 아이들은 기나긴 2달간의 방학이 이제 끝났다. 진짜 몹시나 격하게 살 것 같다. 월요일이 가장 싫었던 삶에서 월요일의 축복을 맘껏 누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핑계 댈 것도 없어졌으니, 앞만 보고 나아가면 된다.


4월 20일, 아산 이순신백의종군 마라톤을 접수했다. 이번에도 하프 마라톤, 근력을 좀 다지고 달리는 시간을 확보하기로 결심했다. 진짜 올해가 가기 전 꼭 풀코스를 완주하고 싶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확신과 믿음으로 나아가고 싶다. 풀코스를 임하기 전, 내실을 탄탄히 다지며 전투적으로 나아가길 두 손 모아 빌어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풀코스 완주를 위해 하프 마라톤을 요리조리 노릇노릇 잘 구워삶아 오독오독 씹어 먹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


#하프마라톤몹시도디지게힘들어버렸다지

#맞으편에서오는야생마를마주할때

#경기수원국제하프마라톤

#페이스메이커는나에게과호흡을불렀쥐

#모두가잘달리게해달라고빌다가뒷사람들좀못달리게해달라고빌었던사연

#월요일이가장싫었던사람이월요일의축복을누리는3월

#아이들2달간의방학끝이젠핑계거리도없어져버렸군

#불안과공포의도가니탕에서완주라는안도의한숨

#이제는이순신백의종군마라톤하프준비

#풀코스를위하여성실히달리세만세만세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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