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비 소식이 있다. 나는 몸을 사리며 훈련을 미루자고 말한다. 남편은 미룰 수 없으며 비가 와도 간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계림공원에서라도 오르막과 내리막을 훈련하자고 했다. 그럼 알겠다고 했다. 남편이 보급품 목록을 말하면 나는 그 물품들을 꼼꼼히 챙겼다. 물과 이온 음료, 파워젤 2개, 젤리 2팩을 앞쪽 주머니에 넣는다. 훈련 중 바로 꺼내기 편하게 위치시킨다. 얼음물과 오이, 바람막이, 에너지바 2개, 핸드폰은 뒷 배낭에 챙긴다. 중후반에 휴식을 취할 때 섭취할 것들이다. 각자의 러닝 조끼가 묵직하다. 평소 훈련하는 것보다 더 챙기긴 했다. 부족한 것보다는 넉넉한 편이 나으니 어쩔 순 없다.
이슬비가 내린다.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하다. 비가 쏟아지더라도 계림공원에서 집은 가까우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쪽 아니야, 이쪽으로 가야지!”
“어? 왜?”
뭔가 내가 잘못 알아들었나 싶었다. 남편이 계림공원 가는 길을 왜 착각하고 있지? 생각했다.
“아미산에서 몽산 갔던 저번 코스 간다고.”
“아까 계림공원 간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는데?”
“이제부터 무거운 마음을 가져.”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지난 등산은 22Km가 조금 넘었다. 5시간 동안 수없이 전진했다.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난이도였다. 반환에서 도착까지 “힘들다”로 시작해서 “죽을지 모른다. 죽을 것 같다. 이미 저세상인가?”라고 수없이 내뱉으며 절망했다. 그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녹다운이었다. 아직은 22km를 갈 체력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다만 30km의 대회를 어떻게 준비할지 막막했다.
남편의 컨디션이 좋다.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빠르다. 자꾸 뛰어야 한다고 보챈다. 나는 지난 등산을 복기하며 처음 속도를 냈던 부분을 가장 큰 실수라고 말했다. 힘이 있더라도 나중을 위해서 그때 쓰자며 재촉을 견뎌낸다. 길은 미끄럽고 빗방울은 더 거세졌다. 남편은 시원하다고 좋다고 한다. 이해하고 싶지 않다. 하늘은 한 번씩 우르릉 소리를 낸다. 나는 돌아가야 할 것만 같다고 말하지만, 빗속에 묻힌다. 우르릉 소리에 “엄마야”라며 잔뜩 웅크린다. 남편은 놀라지 말라고 한다. 하늘은 우르릉 쾅 하기 전 ‘우르릉’을 종종 내뱉으며 겁을 준다. 처음에는 비가 많이 오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이젠 비보다 벼락을 맞을지 무서웠다. 남편은 어이없다며 웃는다.
“벼락 맞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아?”
남편과 극기 체험을 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남편은 교관이다. 나의 입에서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군대에 온 것처럼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 해낼 겁니다.”라며 악을 쓰며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남편의 컨디션이 문제다. 좋아도 도를 넘었다. 반환한다며 기쁨의 초코바를 먹고 있던 나에게, 더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면천 읍성 주변 편의점에서 이온 음료와 보급 물품을 더 사자고 했다. 나는 비를 맞아서인지 두뇌가 면천 읍성을 더 간다는 내용을 버리고, 이온 음료와 보급 물품을 산다는 말만을 붙들었다. 그냥 물이 아닌 이온 음료의 시원하고 달콤함에 목을 축이며 입속에 군것질거리가 들어가는 걸 상상하고 있었다. 남편은 때때로 “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속아 자꾸 더 힘을 내고 있다.
내리막이 많다. 그 말은 다시 돌아올 길이 걱정이 된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은 내리막을 즐기자는 쪽으로 기운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그리고 남편의 속도에 맞춰 속도를 냈다. 이온 음료와 소시지를 사며 이제 진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시원하고 달콤함을 느낀 것도 잠시 오르막의 연속을 맞이한다. ‘이 또한 다 지나간다’라는 마음을 먹는다. 별것 아니라고, 뭐 별거여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한다. 앞만 보고 간다. 속도는 확연히 느려졌지만 앞을 향해 가고 또 나아간다. 때론 잠시 쉬어도 본다.
6시간 25분 동안 27km가 조금 넘는 거리를 오고 갔다. 비 맞고도 좀 더 긴 거리를 완주했다. 남편은 더 뿌듯하지 않냐며 말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말이다. 힘들었던 만큼 대회 때 완주해 낼 거라고 희망을 품어본다. 다만 안쪽 허벅지가 젖은 바지에 쓸려 빨갛다. 집에 와서 보니 이제야 살을 에는 고통이 전해진다. 씻을 때도 걸을 때도 비명이다.
스마트워치를 봤다. 45.000보가 넘는 걸음을 걸었다. 남편은 40.000보가 조금 넘었다. 5.000보 정도를 남편을 따라가기 위해 기를 쓰며 달렸다. 안쓰러웠다. 그러면서 웃음도 났다. 다리가 심하게 짧나? 이렇게나 차이 날 정도인가? 싶었다. 짧은 다리의 노고가 그대로 느껴졌다. 물론 오르막과 내리막에 보폭을 낮춰 잔발로 가려고 했던 부분도 있다. 부단히도 애썼구나 싶었다. 피로가 5.000보를 더 걸은 탓인 것 같다. 한편으론 굴욕이었지만, 이렇게 남편을 따라가기 위해 애를 썼다며, 내 다리를 바라본다. 자꾸 애잔한 웃음이 났다. 짧은 다리, 왕 짧은 내 다리. 완전 짧아.
#6시간25분간등산한부부
#달리기에진심입니다만
#트레일런30킬로준비기
#내다리짧아몹시짧아왕짧아
#남편의컨디션좋은날은위험하다
#잘하고있다는말에힘을더내어본다
#언젠가산에서도날라다니고싶어요
#비가쏟아져도우르릉벼락이쳐도간다
#오르막을오르는자세이또한지나간다
사진: Unsplash의Inge Ma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