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듦, 내일은 조금 가벼워지길

장비 보강과 훈련, 22킬로 트레일런

by 행복 한스푼

대회는 다가오고 있다. 로드에서 장거리를 뛰었고, 계림공원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곁들여 훈련했다. 확연히 나아진 체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조급함이 풍선껌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팡팡 터진다. 부족함을 채워야 할 것 같아 덤벨 운동도 따라 해 본다. 팔로 드는 덤벨 운동을 했는데, 다음날 엉덩이가 항의하듯 쑤셔왔다. 런지와 스쾃이 곁들어진 동작 때문에 팔만 멀쩡하다.


트레일 러닝화, 러닝 양말과 등산 스틱을 구매하며 장비에 힘을 실어본다. 트레일 러닝화는 기존보다 한 단계 높은 제품을 구매했다. 남편 몫도 구매하니 계산대의 숫자는 신나게 고공행진이다. 가격에 휘청하지만 나름 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척한다. 운동은 ‘장비발’이 아니라 ‘돈발’이라는 걸 실감한다.

트레일 러닝화의 뾰족뾰족 돌기 들이 제대로 살아 있다. 새것이 주는 딱딱함에 살짝 긴장감이 돈다. 벌써 기존의 익숙함이 그리워진다. 고 새침데기 같은 새 친구와 나는 환상의 파트너가 돼야만 한다. 그는 내 발을 감싸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추진력을 높여, 완주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길 바란다며 쓰다듬어도 보고, 사랑 가득한 눈길도 줘본다.

소아암 행복 트레일런 대회에서는 몇 개의 산과 봉우리를 수시로 넘나든다. 잔인한 코스다. 이곳들을 어떻게 넘느냐에 따라 완주를 할 수 있느냐와 없느냐로 나눠질 것 같다. 굽이치는 오르막에 등산 스틱을 사용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다. 결국 등산 스틱을 접고 펴는 간편함, 길이감, 무게, 무엇보다 가격을 심히 고려하며 샀다. 옆에 남편이 좀 더 알아보고 괜찮은 걸 고르자고 했지만, 나는 이미 등산 스틱의 환상에 빠진 자로서 귀를 닫았다. 결사반대에도 밀어붙이며, 무모하지만 추진력 있는 여자임을 증명했다.

등산 스틱 가방이 없는 제품을 구매했고, 그 길이가 접어도 길어서 휴대하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집에 와서 보니 그제야 이런 단점이 보였다. 이걸 러닝 조끼에 어떻게 들고 다닐지 2박 3일간 머리를 굴렸다. 답이 없다. 어쩌면 좋지? 남편 눈치가 보인다. 옆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눈에 힘을 주며 째려보자 남편은 잠시 움찔하며 “그러니까 내가 알아보고.” 째려보는 강도를 한껏 높인다. 남편은 입술을 삐죽하며 가지런히 포갠다.

등산 스틱 사용법과 주의할 점을 동영상으로 익힌다. 직각이 아닌 안쪽 사선 형태 잡아 오른발과 왼팔, 왼발과 오른팔이 짝이 되어 11자 형태로 찍어 민다. 잡을 때는 새끼손가락을 쥐며 나머지는 살짝만 잡아준다. 걸으면서 연습했다. 이제 오르막에도 대입해본다. 역시 오르막에서는 획기적일 정도로 역동적이었다. 이 아이를 나는 왜 이제야 만났나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오르막이 즐겁다는 말을 내뱉으며 속도를 올린다. 경사가 있는 내리막도 등산 스틱으로 찍으며 내려가니 미끄러질 것 같은 느낌을 보완해 주었다.

다만, 이 아이와 오르막, 평지, 내리막 모두를 함께해야 한다. 분명 체력을 잘 분배하려고 함께 하는 것인데 체력이 더 고갈되었다. 찍고 밀고 가는 형태, 속도를 낼 때 들고 빠르게 이동해줘야 할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이 아이에 찔릴까 다칠까 조심스러웠다. 분명 오르막은 날 천국으로 안내했지만, 평지와 내리막, 좁은 길에서 사용할 때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걸 접었다 폈다 하기에는 구간도 짧다. 1시간 연습하고 어깨에서 “이건 아닌 것 같소.”라는 곡소리를 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오르막을 더 연습하며 체력을 기르기로, 요령 피우지 않기로 말이다. 폈다 접었다 길이 조절하는 시간, 안 쓸 때는 러닝 조끼에 메고 가야 하는 무게를 고려하며 내린 결론. 30km를 이 아이와 같이 가는 것이 나에게 득일지, 아닐지를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이 아이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강렬했으나 너무 짧게 사랑하다 떠난 연인처럼, 마음이 아린다. 놓아 줄 수 없을 것 같았나,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마음은 그 아이를 놓아주라 한다. 안녕하고 짧게 인사하고, 캠핑 장비 있는 곳에 자리를 마련한다. 이제 우린, 언제 볼지 모르는 그런 사이가 되어 버렸다.

대신 나는 내츄럴 스틱을 만드는 자세를 연습했다. 오르막에 오를 때 몸을 앞으로 굽히고 팔을 허벅지에 대고 미는 자세다. 일면 팔 스틱이다. 냈다 꺼냈다 힘들이거나 조절하지 않아도 되고, 주변 사람 다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휴대하는 데 무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내 굵은 팔’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제 실전이다. 대덕산을 경유해서 아미산을 지나 몽산에 가서 반환한다. 몽산에서 임도를 따라 대덕산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대략 18km를 예상했다. 처음에는 남편보다 앞장서 자잘한 오르막도 잘 넘어간다. 연습한 힘을 발휘해 내고 있다. 마음은 달리고 싶지만, 힘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걸음의 속도를 조절하며 나아간다.

오르막과 평지, 내리막이 반복되다 어느 순간 오르막만 나온다. 돌계단 축제에 고통은 비명을 지르며 춤을 춘다. 이젠 앞자리를 내어주며 남편의 뒤를 따른다. 분명 오르고 올랐다. 이제는 흙으로 된 오르막이 나와 반긴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보지만 새어 나오는 거친 숨소리를 숨길 순 없다. 오르막의 절정을 경험하다 나무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옆에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힘든 마음을 녹인다.

분명 몽산만 가는 길은 힘들지 않은 코스였다. 대덕산과 아미산을 이어 몽산을 맞이하자 이렇게 힘든 코스였나 기억을 의심했다. 이젠 조그마한 오르막에도 발걸음이 느려지다 멈춰 서기도 했다. 반환점이 나오지 않는데 또다시 오르막이 보인다. 몹시도 격하게 뒤돌아 가고 싶다. 남편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혼자가 아니라는,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공감의 숨소리였다.

모든 에너지는 고갈되었다가 소시지, 에너지바, 얼음물, 빵을 먹으며 조금씩 채워갔다. 잠시의 쉼이 주는 감사함보다 이제 반환해서 나아갈 길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도 목표한 바를 위해 묵묵히 나아간다. 뒤질 것 같다고 마음의 외침에, 해내 보자고 조금만 견디자고 다 와 간다고 희망 고문으로 답변한다.

마지막은 힘을 쥐어짜며 내리막을 달렸다. 모든 힘듦을 날려버리는 질주였다. 그렇게 트레일런 22.2km를 5시간 만에 완성했다. 남은 두 달 동안 거리를 늘리고, 속도를 올리는 훈련이 남았다. 오르막에 대한 숙제가, 지구력에 대한 보완을 어떻게 풀어갈지 겁나기도 하지만, 변태처럼 재밌을 것 같다. 성장하는 쾌감을, 성공할 나를, 완주할 미래를 그렇게 그려본다.

오늘의 이 힘듦이 모여 내일의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달리기에진심입니다만

#30Km트레일런도전기

#등산스틱살때조언을귀등으로듣지않은추진력있는여자

#등산스틱과헤어질결심

#트레일러닝화그와환상적파트너가되길쓰다듬고사랑스런눈빛으로

#오늘의힘듦이모여더나은내일이되길

#소아암트레일런행복런

#겁나기보다변태처럼재밌을것같은나의트레일런

#힘든만큼나는성장한다

#운동은장비발보다돈발


사진: UnsplashBenjamin Vo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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