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별거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이가 캐리어에 짐을 싸고 있다. 여행을 가는 건 아니다. 매일 자신은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소리 지른 후, 안방에 있던 작은 캐리어를 자신의 방으로 옮겼다. 찌익 캐리어 지퍼를 열며 가방 속에 무엇인가를 담는 소리가 들렸다. 울음 섞인 목소리에선 원망이 가득했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되어간다고 남편과 눈빛을 교환했다. 하지만 이 아이의 행동을 멈출 방법이 도통 생각나질 않는다. 밤의 무게만큼 나의 마음엔 새까만 재가 드리운다. 메아리치는 아이의 말들을 되새김질할 뿐이다.
‘이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고? 그것도 매일 매일?’
언젠가부터 톱니바퀴가 헛돌듯 어긋나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은 자매의 다툼, 스마트 폰을 사용하는 문제, 반항적인 모습에 꾸지람하며 얼굴을 붉혔다. 아이를 몰아붙이지 말자고, 못된 엄마가 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다짐은 다짐으로만 끝났다. 불을 뿜어내듯 미워하는 감정을, 나의 분노를 이 아이에게 곧이곧대로 쏟아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엄마가 되었다.
“나갈 거면, 당장 나가. 너는 가족을 그렇게 밖에 생각 못 해?”
칼끝을 닮은 날카로운 말투, 아이의 귓가를 긁었다. 아이는 캐리어를 끌며 잠시 주춤한 채 현관문을 쏘아본다. 집을 나간다고 홧김에 한 말이라는 걸 나도 안다. 머리로만 잘 안다. 어르고 달래며 감싸 안아야 한다고 스스로 명령하지만, 그만큼 격렬히 저항한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않도록,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가볍게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결코 무거워 보이지도 않았다.
산에 올랐다. 남편과 함께였을 때는 숨 가쁘게 뒤쫓기 바빴던 길. 홀로 걷는 이 길은 나의 속도로 나아갔다. 탁 트인 시야가 오히려 어색했지만 뚜렷하고 선명히 앞을 볼 수 있었다. 오르막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평지와 내리막도 느꼈다. 이 길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구나, 조각난 기억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다만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갈래 길을 한 번 더 쳐다봤다. 기록 단축을 위해 내리막에선 달려야 하지만, 오르막을 오를 생각에 잠시 접어두었다. 처음부터 힘을 빼면 너무 쉽게 되돌아갈 것 같았다.
쌓여있던 분노와 미움의 감정들을 차례로 꺼내 놓는다. 펼쳐보니 별것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다툴 일도, 얼굴 붉힐 일도 아닌 사소한 것이었다. 왜 매번 넘어지는지, 속마음의 크기는 10원짜리 동전만 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 끊임없이 불리는 게 싫었다. 흐트러지는 집중력에 조급함이 더해졌고 반복될수록 화가 났다. 특히 늦은 시간이 되기 전 피아노를 쳐야 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딱 그때가 되어서, 아이들은 공부하겠다고 나선다. 순전히 핸드폰 시간을 얻기 위해서다.
짧은 영어 문장 암기, 수학 한 페이지를 내준다. 2분이 채 지났을까? 아이는 모르는 문제에 조바심을 내고 풀리지 않는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도와주고 나서 피아노 앞에 앉는다. 이번에는 영어 문장이나 단어를 묻는다. 그러고 다 외웠다고 부른다. 검사해 보면 틀린다. 다시 피아노 앞에 깊은숨을 몰아쉬고 앉는다. 다했다고 또 부른다. 검사해 보면 또 아니다.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하지만, 꾹 참고 피아노 한 소절을 친다. 지치지 않고 아이는 또 부른다. 틀리는 비극을 또다시 마주한다. 그리고는 핸드폰 사용 시간을 더 줄 것을 당당히 요구하고 협상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결국 나는 분노의 래퍼가 된다. 최후의 보류였던 ‘불러서 틀리면 시간 삭감’의 패널티를 부여한다. 꿋꿋하게도 아이의 부름을 멈출 생각이 없다. 그러곤 5분 삭감이라는 절망적인 결과를 맞이한다. 아이는 또 틀렸다. 핸드폰 시간이 삭감된 만큼 아이는 화나고 있음을 표시하기 시작한다. 그런 삐딱선이 나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다. 이제 전투태세로 서로 정중앙을 향해 펀치를 몇 방 주고받는다. 이런 상황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계속 반복된다.
‘대체 왜 우리는 파이터가 되었는가? 누군가는 꼭 이겨야만 하는, 무승부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싸움, 승리만을 위해 죽일 듯이 할퀴는 파이터.’
이상하게도 승자는 없이, 둘 다 패자로만 남는 게임을 말이다.
격렬하게 원망한다. 너가 아무리 나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나의 감정을 인내하면서, 연마하면서 나를 채찍질하고 싶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왜 그래?” 그런 말을 들을지라도, 엄마라서 그런다. 엄마는 감정도 없니? 너의 모든 짜증을 받으라고 존재하는 것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기분은 엉망이 된다. 화를 내며 비난하고, 인내력의 얕디얕은 바닥을 보이고야 입을 닫는다. 아이만큼 미성숙한 나 자신을 확인했을 땐 이미 늦었을 때다.
비난은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지옥이 된다. 누군가의 미움은 그 사람에게 갔다가 다시 나에게 반사되어 돌아온다. 그렇게 반사된 미움은 더 크게 나를 휘청이게 한다. 사랑할 수 없음보다 더 큰 구멍을 내고 나를 자책하게 했다.
상담을 받았다. 사춘기인 아이와 잘 지내고 싶었다. 세 가지를 조언받았다. 하나의 인격체로 이해해 줄 것, 첫째와 트러블이 있을 때는 첫째만을 따로 불러 둘째가 없는 곳에서 훈육할 것, 훈육할 때 감정이 올라올 때는 잠시 손을 씻고 오든지 감정을 가라앉히고 절대 화내지 말고 이야기할 것이었다.
첫째를 혼낼 때 항상 그 고집을 누르려고 했다. 둘째는 항상 그 옆에 있었고 눈치를 살폈다. 감정이 상한대로 남편과 나는 2대 1로 한 조가 되어 공격했다. 모든 조언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상황을 보고 둘째는 첫째를 모델로 삼으며 부모와 대항할지, 첫째를 무시하게 될지 2가지를 상황에 따라 선택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첫째와 둘째의 싸움도 빈번하게 일어났던 이유였다. 첫째를 무시하는 상황에 노출된 둘째는 첫째를 싸워 이기려 했다.
마음이 내려앉았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사주고, 맛있는 걸 먹이고, 공부를 쉽게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마음 하나를 살펴보려 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음만 보고 있었다. 사춘기라는 타이틀을 씌워 모든 잘못을 너에게 돌렸다.
분노, 별거 아니라고 지나가는 것이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내가 말하면 그렇게 된다. 때론 감정들을 압축시켜 작게 보는 법도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상담을 받고 등산을 하고 나니 감정들이 조금 정리가 되었다.
아이도 쭈뼛쭈뼛하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려고 분위기를 살폈다. 남편과 나도 말할 때 화내지 않도록 잘못한 아이만 따로 불러 훈육하기로 했다. 언성을 높힌 우리를 지켜보며 눈물을 터뜨렸던 둘째는 조금은 어리둥절하다, 부드러진 분위기로 바뀌자 그제야 안심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할퀴던 파이터에서 서로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파이터가 되었다. 싸워가며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사춘기아이와잘지내고싶었어요
#상담받으며나는반성했지
#끝도없는부름에나의인내력은바닥이되어분노의래퍼액션
#아이들의부름은멈출줄몰랐지
#스마트폰이불러일으킨싸움들
#너를향하던비난의화살을멈추며
#등산을하며감정을꺼내놓으니별것아닌것에화냈음을돌아보다
#서로를할퀴는파이터에서타협점을찾아가는파이터로
#싸움에노출된둘째에게도미안함을전하며
#기록하며각성하는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