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상상 속, 나의 트레일런
연습했던 만큼 하길 원했다. 오르막에는 속도를 늦추고 내리막과 평지에는 조금씩 속도를 내는 것 말이다. 야트막한 계림 공원을 17km 후반까지 연습해봤고 3시간 30분 정도를 연속해서 움직이는 연습을 수행해봤다. 개인 훈련으로 12km를 걷고 달리기도 했다. 이제 실력 발휘할 때라 여겼다. 진짜 실전이다. 대덕산을 경유해서 아미산을 가는 2개의 산을 오르내리면 됐다.
산을 오르는 입구부터 긴장감과 두려운 감정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지금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해보는 훈련 같았다. 살짝도 아닌 살벌한 오르막을 만나게 된다. 야트막한 산에서의 오르막 연습을 실전에 대입할 때다. 그런 감정만큼 심장의 두근거림이 올라왔다. 초행길은 아니지만 참 오랜만에 올랐다. 새로운 곳에 온 것처럼 낯섦이 마중 나왔다. 입구 초입은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곳을 조성한다며 요란한 굴삭기 소리와 사람들로 붐볐다.
날씨도 오락가락했다. 소나기 소식이 있다는 예보는 들었지만 조금씩 비가 내릴 때는 이러다 굵은 빗방울로 바뀌면 어쩌지 싶었다. 때때로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였고, 공기는 물기를 한껏 먹은 듯 습하고 더웠다. 그러다 모든 태양 광선을 다 쏟아내듯 열을 발산하다가 조금 흐렸다가 먹구름을 만들어 비를 뿌렸다. 오르막을 오를 때는 죽을 것 같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조금 살 것 같은 기분으로 바뀌는 내 마음과도 닮았다. 초반부터 힘듦의 나라에 초대받았다. 이렇게 가다가는 컷오프(특정 기준 미달이 되면 탈락하는 시스템)다. 실력도 발휘해 보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가시오”를 선고받을 수 있었다.
대회 접수 후, 한 달이 지났다. 나의 열심은 실력 발휘의 ‘ㅂ’자도 꺼내지 못했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 했다는 자책과 반성으로 되돌아왔다. 초입은 올라가는 구간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30분도 지나지 않아 여기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남편과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백기를 번쩍 들고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남편 몰래 도망가는 상상을 몇 번이고 했다. 도망가다 들키면 종일 욕받이의 삶을 살 것 같아 순순히 포기했지만. 그러다 몇 번을 멈춰 섰다. 차오르는 숨은 진정되지 않고 숨이 트이지 않은 과호흡 상태가 계속되었다.
‘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라고 나의 자아가 호들갑을 떤다. 그랬더니 나의 또 다른 자아가 나서서 ‘어디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니?’라며 호들갑을 떠는 자아를 혼낸다. 전진하자는 나와 그만 멈춰 서자는 나는 50대 50으로 팽팽하다. 어느 순간 49대 51이 되면 51이 된 자아가 의기양양해지며 그 계획을 다리에 재빠르게 전달한다. 그래서 멈춰서기도 하고,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나의 몸도 수시로 바뀌는 지시에 지쳐 갔다. ‘엥간히(적당히) 좀 하나만 하면 안 돼?’라고 발악을 한다. 하지만 올라갈 때 마음 다르고 평지일 때 마음이 다르다. 또 내려갈 때 급경사를 만나기라도 하면 제동을 걸었다가 속도를 올렸다가 걷잡을 수 없음을 선언한다.
계속되는 계단도 불규칙한 돌계단을 만나느냐 일정한 나무 계단을 만나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졌다. 커다란 돌계단에 다리를 올리며 인생의 쓴맛을 느낀다고 생각했고, 나무 계단을 오르며 인생의 짠맛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르막은 왜 이렇게 긴지 축지법을 써서 올라가고 싶었다. 어깨에 날개를 펼치며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뽀로로의 로디처럼 다리가 쭉쭉 길어져 두세 걸음에 오르막을 끝내버리고도 싶었다. 이런 쓸데없는 상상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러닝 조끼에 챙겨온 오이를 씹었다. 아삭아삭한 소리는 나의 불평을 오이만의 소리로 대신해 주는 것 같았다. 베어 물때마다 오이의 단내와 수분이 느껴졌다. 잘근잘근 씹어대며 30km 트레일런을 신청한 내 발등을 백번씩 찍고 싶었다. 그러다 스마트 워치의 알람이 울리면 그래도 잘 참고 있다고 나를 격려하고 있었다. 바나나의 단맛에 어찌 쉽게 얻어진다면 그것이 값지다 할 수 있느냐며 멋진 도전이라고 나를 추켜세우다 바나나를 다 먹자 현실로 돌아왔다. 이걸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요. 얼굴에 올라오는 기미와 온몸에 시커먼 살결은 밤에 나가면 어둠과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젤리의 단맛에 잠깐 힘내다 두 알을 먹자 그 단맛에 질렸다. 마음은 그렇게 수시로 힘이 났다 쭉빠졌다 슬퍼졌다 보람을 느꼈다 종잡을 수 없었다.
아미산 정상이 다가올수록 가파른 오르막이 절정을 이뤘다.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이를 악물어보지만, 몇 발자국 가지 못한다. 다리마저 떨려온다. 숨의 헐떡임은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다. 남편이 “하나도 안 힘든데?” 할 때마다 그냥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나만 디지게 힘든 등산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약이 올랐다. 종교를 빌어 한걸음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내딛었다. 회개 기도를 조금하고, 감사 기도를 조금하고, 제발 끝내게 해달라고 간구 기도를 끊임없이 편파적으로 많이 했다. 그렇게 나와 남편은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 먹는 얼음물은 그 어떤 맛보다 달았다. 에너지바의 초코도 인생의 단맛을 잠시나마 느끼게 했다. 소시지 하나를 베어 물며 그래도 오르길 잘했다고 결론지었다. 일어서고 나니 의자에 엉덩이 땀자국이 선명하게 하트를 그렸다.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올라가는 것 보단 낫지 않느냐는 생각에 번번이 미끄러지려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내려오고 올라오고 내려오고 또 올라가는 길을 또 반복했다. 그렇게 15km를 3시간 34분으로 종료했다.
이보다 2배의 거리를 더 가야 한다는 사실, 6시간 30분 안에 완주해야 한다는 사실, 평지와 내리막조차 달릴 엄두도 못 냈다는 사실, 모든 게 긍정적일 수 없는 이유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나는 두려웠던 감정을 이겨내지 못했다. 겁먹느라 에너지를 더 소비했다. 운동은 기세인데 잘하지 못할 거라는 감정에 흔들렸다. 이 감정을 이겨내는 것도 훈련이다. 어쩌면 좀 더 안정적인 체력을 키우는 것으로 확신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첫 시도에 뜻대로 되지 않음을 제대로 배웠다. 그럴수록 나의 필살기를 발휘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묵묵히 가면 된다. 첫 출전에 컷오프를 당할 수도 있고, 완주를 못 해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간다. 묵묵히 끝까지 가다 보면 언젠가 가 닿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가면 된다. 그렇게 나는 완주할 러너로 완성되어가고 있다.
“기죽지 마! 끝까지 가봐! 후회 없이 남은 기간 즐겁게 달려 나가자!”
#앞으로가라는자아와멈추라는자아의충돌
#나의트레일런도전기
#소아암30K행복트레일런도전
#오이맛불평과바나나맛현실도피젤리파워
#하나도안힘들다는남편뒤통수를때리고싶었지
#컷오프당하고싶지않아
#포기하지않고묵묵히가다보면언젠가가닿으리
#나는완주할러너
#30분만에남편두고도망치고싶었지
#함께라면함께라서끝까지간다